"왜 패배한 후보가 무리수…" 민주 책임론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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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에 패배한 민주통합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인선을 두고 주류인 친노와 비주류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당 대표 권한대행을 겸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선 후보는 23일 비대위원장에 당 바깥 인사인 안경환(64·서울대 법학 교수) 국민연대 상임대표를 내정했으나 비주류 측의 강한 반발로 이를 반나절 만에 철회했다. 비대위원장은 새 지도부를 선출할 때까지 당 대표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대신 민주당은 박지원 전 원내대표 사퇴에 따라 새로 선출할 후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초 문 전 후보 측은 24일 오전 당무위원회를 열어 안 대표의 비대위원장 선임 건을 상정해 통과시키기로 하고 비주류의 반대를 봉쇄하기 위해 23일 비주류 측 전직 지도부가 추천한 당무위원들을 전격 해촉했으나 반나절 만에 해촉 자체를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안 대표는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뒤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산하 새정치위원장으로 영입됐었다.

 문 전 후보는 21일 민주당 원로 및 중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경환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방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모아 달라”고 했다고 한 민주당 관계자가 전했다. 당초 당 안팎에선 정세균 상임고문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 등의 기득권 포기 선언이 이어지자 정 고문 역시 민주당 대선 선대본 총괄책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배제되고, 안 대표 카드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비주류 측은 문 전 후보의 지명권 자체를 부정하면서 강력 반발했다. 이해찬 전 대표가 11월 18일 사퇴하면서 ‘대선 후보’에게 대표 권한을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대선 후보가 아닌 문 전 후보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문 전 후보 측은 이 전 대표가 권한대행 자격을 ‘문재인 의원’에게 위임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이후 익명을 원한 한 중진 의원은 “왜 패배한 대선 후보가 후임자를 지명하려 무리수를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문 전 후보를 비판했다. 한 원로 상임고문은 “1400만 표를 얻은 대선 후보라고 하는데 최다득표를 하고도 진 건 더 큰 죄”라며 “비상시기에 처한 당을 외부인사에게 맡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비주류 4선인 김영환 의원은 23일 자신의 ‘대선일기’에서 ▶단일화 실패 ▶친노 프레임 ▶중도·중부권 전략 부재 등을 대선 패배 이유로 꼽은 뒤 “총선,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친노세력은 역사 앞에 큰 죄를 지었다”며 “민주당은 이제라도 친노의 잔도(棧道, 낭떠러지 같은 험한 곳에 선반처럼 낸 길)를 태우고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문 전 후보 측이 안 대표 지명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조만간 열릴 의원총회에서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결정하게 됐다.

 원내대표 경선엔 주류 측에서 4선의 신계륜 의원, 3선의 박영선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고 비주류 측에선 3선의 조정식 의원 등의 이름이 나온다. 중도 인사론 지난 원내대표 경선에서 2위로 낙마한 3선의 유인태 의원, 4선의 원혜영 의원 등이 거명된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22일 서울 용산 김구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송년회에 참석해 “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국민의 눈높이에 우리를 맞추겠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눈높이에 국민을 끼워 맞추려 했다”며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만 하면 된다는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고 참석자들이 23일 전했다.

 손 고문은 “국민은 맹목적인 정권교체와 야권 단일화를 원한 게 아니었다”며 “대선 패배는 민주당을 비롯한 전체 야권, 진보적 정치세력 전체의 대오각성과 성찰을 준엄히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과 안철수씨가 합의한 ‘새정치공동선언’에 대해 “기껏 의원 정수 줄이고 세비를 감축하는 말단지엽적 논의가 있었으나 포퓰리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정치공동선언은 국민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곧바로 휴지통에 던져졌다”고 지적했다.

강인식·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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