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선수 이름 경기장, 화끈해? 민망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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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대구 동구청이 율하체육공원의 이름을 바꿔 조성한 ‘박주영 축구장’. [사진 대구세계육상대회 홈페이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에겐 없고, 한국 축구스타 박주영(27·셀타 비고)에겐 있는 것이 있다. 자기 이름을 딴 경기장이다. 대구에는 ‘박주영 축구장’이 있다. 이곳은 원래 율하 체육공원 축구장이었다가 대구 동구청이 지역 출신인 박주영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7월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8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 참가한 볼트는 이 박주영 축구장에서 훈련했다. 볼트는 박주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더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자메이카 어디에도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은 없다.

 지난 2일 전남 화순에서는 ‘이용대 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이 시설은 배드민턴 전용 체육관으로 화순은 이용대(24·삼성전기)가 태어난 곳이다. 여자 역사 장미란(29·고양시청)도 2010년 2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그의 이름을 딴 체육관을 개관한 바 있다. 두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일 전남 화순에서 문을 연 배드민턴 전용 경기장 ‘이용대 체육관’의 조감도. [연합뉴스]

 현역 선수들의 이름을 딴 체육시설 건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순기능이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어린 선수들에 대한 대우치고는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은 한국과 다르다. 선수나 감독이 희끗희끗한 머리가 되어서야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체육관을 짓거나 동상을 세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71)이 26년간 팀을 이끌고 나서야 최근 홈구장인 올드트래퍼드 한쪽에 동상을 세워줬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인터밀란은 레전드인 지아친토 파체티(70)의 이름을 딴 홈구장(파체티 스타디움)을 이제야 건설 중이다.

 한국체대 김병식(레저스포츠학) 교수는 “1990년 이후 스포츠마케팅을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선수 이름을 딴 시설이 생겨난 것으로 본다”며 “어린 선수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수 이름 사용의 남발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20대는 이룬 것보다는 이룰 게 많은 나이다. 올림픽 메달 땄다고 외국에선 우리처럼 화끈하게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개관할 땐 요란하지만 정작 운영이나 관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체육관이 1년에 한두 차례 대회 때나 사용되는데, 지역민 편의와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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