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일간지에서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신춘문예」의 당선??곡을 무대화한다는 극단「드라마·센터」의 두 번째 작업.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상연된 이 공연은 중앙일보입선 원갑희 작 「동굴설화」(이원경 연출) 동아일보당선 오재호 작 「담배내기」(이광래 연출), 조선일보당선 전진호 작 「들개」(이진순 연출), 경향신문당선 고동률 작 「동의서」(이해랑 연출), 이렇게 네 편이었다.
<통속적 눈물과 한국적인 눈물>
『동의서』― 김금지의 「처」는 분명히 정신병자는 아닐 터인데 정상적인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짜증을 느낄 정도로 그 「처」는 신경질적이다. 통속적인 눈물과 한국적인 눈물에 질색한다는 이 작자가 우리를 이토록 초조하게 만들었으니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김금지는 「콕토」의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돌아간 듯하다.통속적>
<젊은이의 박력 쥐어짜는 웃음>
『담배 내기』― 관객들은 배를 쥐고 웃었다. 연기진은 모두가 신인들로서 젊은이다운 박력과 재기가 넘친다. 그러나 그들이 쥐어짜는 웃음은 이따금 어떤 사람들이 재현하던 쥐어짜는 울음을 연상시킨다. 그들 연기자들은 관객을 웃기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지나치게 드러난다 .
작자의 재치와 기교가 넘쳐흐르는 『담배내기』였지만, 왜 작자는 민승원의 사창굴출입 얘기와 간호장교의 「팬티」 얘기로 우리를 웃기려고 했을까? 이만한 작품을 쓸 수 있는 그라면 좀 더 다른 얘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고무신에 작은 거울을 끼고 간호장교의 「팬티」를 비쳐 보는 장면에서 외면해버리고 싶은 관객은 없었을까?― 그런데도 관객들은 높은 소리로 웃기만 했다….젊은이의>
<춘향이처럼 부끄러울까>
『들개』― 30년대의 「테마」가 아닐까? 멋진 「홈런」을 치고야 말겠다는 이 작자는 『천천히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는 명심록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러나 빨리, 10년 안으로 30년은 뛰어야 하니까―』 안정된 남자연기진의 연기로 무대는 듬직했지만 「순나」 김 애리사는 역시 30년대의 순박한 처녀. 23세의 여자는 모두 그렇게 시집얘기 앞에서 춘향이 처럼 부끄럼을 타야 하나, 이 현대에.춘향이처럼>
<시적인 분위기 은 쟁반의 사과>
『동굴설화』― 그러고 보면 이 작자는 자기 나이에 비해 너무 앞서있다. 춘향전 대목으로 진입했을 때 이 작품은 잠깐 빛났다. 그러나 관객의 티 묻은 웃음이 쏟아질매 「은 쟁반의 금 사과」란 명구가 생각된다. 배우는 우선 자기의 말이 들리도록 말하고, 자기 몸이 보이도록 무대에 서야한다.
전체분위기가 시적이면서 움직임조차 무용적이어서 좋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태초의 혼돈상태를 보이듯 명확치 못한 것을 느낀다. 역시 우리의 결어는 이 작품의 「심볼릭·터치」의 무위성에 있다.
전체적으로― 네 작품 모두가 뚜렷하게 달라서 흥미가 있었고 여기에 따른 무대장치의 변화도 썩 좋았다. 네 작가의 취향이 달라서 흥미가 있은 반면 네 작가의 시대에 비해 추구 점에 있어서 너무도 공통성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실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실적인 공동의 이념이 없는 것이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미로를 걷고있다.
이러한 네 개의 작품을 또한 네 사람의 노련한 연출자가 담당함으로써 「드라마·센터」의 이번 공연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새 극작가의 출현에 대해 이렇듯 융숭한 대접을 한일이 예전엔 없었다. 우리 연극의 새로운 체질이 이러한 행사를 통해 서서히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다. 이번 공연의 성과를 크게 평가하고자하는 이유는 진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시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