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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80여명이 거의 미국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재외물리학자 실태조사서>
소정의 학업을 마치고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숱한 해외 유학생들. 이들에 대해선 진작부터 시비가 많았다. 조국을 등진 사람이라고 비난되는가 하면 돌아온들 적당한 일자리가 있느냐고 동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학업과정을 마치고 어떤 연구업적을 올렸으며 현재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를 상세히 조사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 한국물리학회(회장 권영대 박사)에서 처음으로 재외물리학전공자들에 대해 실태를 조사해봤다.
65년 12월말 현재로 외국의 대학원서 공부하고있거나 조교수이상 혹은 주요연구원으로 있는 물리학도 내지 물리학자는 도합 1백 80명. 그들의 대부분은 미국에 있다.
출신학교별로 보면 서울대가 1백 33명이며, 연세대가 27명 그리고 나머지 20명이 기타대학으로 되어있다. 그동안 미국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74명.
그 중 17명이 귀국해서 대학 혹은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국내의 학위소지 물리학자 총수가 23명인 사실에 비춘다면 미국에 남아있는 57명이라는 수의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되는 노릇. 미국대학서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있는 물리학자는 20명이고 유수한 관·민 연구소의 주요 연구원으로 있는 자는 50명이다. 조교수면 월봉이 6백「달러」 이상이고 주요연구원이라면 월봉이 8백 내지 2천「달러」이다.
여기다가 미국서 만도 매년 7∼8명의 물리학분야 한국인박사가 배출되고 있다. 미국서 매년 탄생하는 물리학관계 박사는 모두 약5백 명이니 그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미국 물리학계를 위한 보급창이라고 까지 불리고있다. 특히 서울대공대에서 미국 「위스컨신」 대학으로 유학 갔던 이휘소 박사는 「벤자민·리」라는 이름으로 그곳 물리학계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에 머물러있는 물리학자가 많은 것은 고사하고 매년 미국으로 유학 가는 물리학도의 수도 적지 않다. 65년도에 미국대학원의 장학금을 얻어 한국을 떠난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 졸업생수는 17명. 동 물리학과 졸업생이 30명 이내이고 보면 반수가 넘는 셈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수업료 면제라는 특전 외에도 월평균 2백∼3백「달러」의 생활비지급을 약속 받고 유학의 길을 떠나고 있다. 이장이 외국, 주로 미국에 있는 물리학도 내지는 물리학자들의 실태인데 비록 규모에 있어서 대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화학계나 공학계 흑은 의학계 등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그들이 머물러 있을 만한 풍토가 만들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정원이 꽉 차 있을 뿐 아니라 시설이 빈약하고 연구비가 거의 없는 정도이며 대우가 좋지 않으니 귀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인 것이다. 반면 미국은 시설이 엄청나게 많고 연구비가 풍부하며 대우가 두드러지게 좋다. 연구 업적만 올리면 얼마든지 대우는 좋아진다.
모 박사 말대로 한국에 돌아오는 그 순간부터 학적능력의 수준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형편이니 그들 재외학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 주임교수 고윤석 박사 말마따나 그들의 축적된 지식을 한국을 위해 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실정인데도 우리나라정부는 해외에 나가있는 과학기술자의 실태조사에 전혀 손을 못 대고 있다. 2천5백48명의 이공계류 학생이 있다는 숫자나 파악하고 있을 뿐이고 그들 중 몇 명이 학위를 땄으며 몇 명이 어떤 직장에 있으며 또한 어떤 업적을 올리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기술자양성이니 과학자 배출이니 하는 구호도 좋지만 해외서 실력을 쌓은 과학기술자를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불러 유용하게 배치하느냐가 더 시급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통한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이런 해외인력 이용문제부터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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