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장에 ‘전문 스튜디오’ 차려 “어른신들 촬영 줄 서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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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천안사직동지점 이상구 부지점장이 14일 객장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영정사진을 찍으며 밝게 웃고 있다. [조영회 기자]

14일 오후 5시. 국민은행 천안사직동지점에 스튜디오가 차려졌다. 조명시설까지 갖춘 촬영장비는 물론, 의상, 메이크업, 인물사진수정프로그램까지 갖춘 제대로 된 스튜디오가 객장 빈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은행 천안사직동지점(이하 사직동지점) 직원들은 지난 4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객장 한켠에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저런 복지시설에 방문해 몇 시간 봉사하고 기부금을 전달하는 1회성 봉사활동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김만석 사직동지점 지점장은 직원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찾던 중 무료 영정사진 촬영을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사직동지점은 구도심에 위치해 있어 주변에 기초노령연금 수혜자가 많았다. 자식들이 먼저 찍자고 나서지 않으면 비용 부담 때문에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진촬영은 이상구 부지점장이 맡기로 했다. 은행에 들어오기 전 잡지사 사진기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딱’ 이었다. 그러나 장비가 문제였다. 이왕 시작하는 거 제대로 장비를 갖춰서 해보기로 했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직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돈이 600만원. 촬영장비와 인물사진 수정프로그램 등 촬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새로 구입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 촬영 때 입을 한복도 여러 벌 구비할 수 있었다. 메이크업은 출장비가 워낙 비싸 고민하던 중 신부동 ‘아우라 뷰티칼리지’ 메이크업 학원에서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 이 학원은 매주 메이크업아티스트 2명을 무료로 보내주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영정사진 촬영이 4월 이후 무려 300여 건에 달한다. 연말까지 대기자도 50여 명에 달한다. 많을 때는 하루 15명이 넘는 노인들이 몰려와 영정사진을 찍는다. 촬영된 사진은 주말에 수정작업을 거쳐 8×10인치 액자에 담겨 노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신청자가 밀려있어 연말까지 추가신청을 받지 못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지만 처음엔 신청자가 없어 난감했다고 한다. 사직동지점 직원들은 궁리 끝에 샘플사진을 객장에 전시해 보기로 했다. 일반 고객들이 객장을 찾아왔을 때 불쾌해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반응이 좋았다. “좋은 일 한다”며 격려하는 고객들이 훨씬 많았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천안시 전 지역은 물론 멀리 공주 등 다른 시·군에서도 신청이 들어왔다. 객장 업무 때문에 촬영은 5시 이후부터 시작되지만 3시부터 와서 기다리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부지점장은 “사진을 찾아 가실 때 ‘왜 이렇게 눈이 작게 나왔느냐’ ‘주름이 왜 이렇게 많느냐’ ‘눈이 왜 짝짝이냐’ 하실 때 난감하다”면서도 “사진을 찾아가시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사진만 찍고 찾아가지 않은 노인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부지점장은 “전화도 안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찾으러 오시는 어르신 중에 ‘얼마 줘야 하느냐’ 물으시는 분들이 있다. ‘무료라’고 하면 나가셔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사 오신다. 사직동지점 직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음료수를 먹는다’며 행복해 한다”고 말했다. 신청전화 041-561-3211~5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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