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한 영혼 카메라에 담는 ‘천사 촌장님’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사랑의 사진전`10주년 기념 사진집을 들고 있는 조세현 작가

사진가 조세현(54)에겐 별칭이 있다. ‘천사 촌장’. 입양을 기다리는 갓난 아기들을 품에 안은 스타들을 매년 찍으면서 붙여졌다. 전시회 제목도 ‘사랑의 사진전-천사들의 편지’다. 그는 흑백 사진 한 컷 속에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천사들의 영혼을 담아 왔다. 입양에 대한 사회 인식을 바꾸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2003년부터 시작한 작업은 올해로 꼭 10주년을 맞았다. 20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회가 열린다. 10주년이니만큼 컨셉트도, 프로그램도 특별하다. 김승우-김남주, 유준상-홍은희, 손지창-오연수 등 연예인 부부 12쌍이 나섰다.

회고전도 마련했다. 지난 10년간 찍은 180여 컷 중 40컷을 골라 다시 전시하는 한편 과거 모델이 돼 준 아기들 9명을 다시 찾아가 찍은 사진도 공개한다. 이를 위해 그는 올해 미국에 건너가 5년 전 고소영과 함께 찍은 재호, 4년 전 윤은혜의 품에 있던 승진이를 만났다. “ 마치 제 아들을 만난 것처럼 하루 종일 붙어 있다 헤어졌어요. 제가 찍어준 사진을 신주단지 모시듯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서 뿌듯하고 기뻤어요.” 이번 전시를 기념하며 10년을 기록하는 사진집도 펴냈다.

돈 버느라 바빴던 그가 ‘착한 외도’를 시작한 건 2000년. 신부님이자 장애인 보호시설 원장님이던 외삼촌의 권유로 장애인 사진을 찍게 됐다. 이후 비슷한 요청이 쇄도했다. “2003년 가을에 대한사회복지회의 아동복지사가 e-메일을 보내 왔어요. 곧 입양될 22명의 아기들 백일 사진을 찍어 달라고요. 그러마 했죠.” 복지회는 연말 그 사진들로 꾸민 전시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 초대받아 갔다가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당시만 해도 입양 대상의 20%만이 부모를 찾는 수준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새 가족을 찾아줘야겠다고 결심했죠.”

모델은 매번 달라지지만 촬영방식은 변함없다. 10년째 같은 카메라, 같은 렌즈, 같은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이는 늘 옷을 입히지 않고, 여전히 흑백 사진을 고수한다. 이유는 단 하나, ‘보편성’을 위해서다. “제가 즐겨 쓰는 말이 있어요. ‘내 카메라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죠. 대상이 장애인이든 가난하든 부모가 없든 내 렌즈를 통하면 다 품위 있게, 공평하게 보여야 해요. 빈부가 드러나는 옷, 피부색이 다른 어른과 아이 등 모든 요소를 배제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그는 관람객이 사진을 보며 아이의 눈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 정면에서 찍는다. 한 아기를 60~70컷씩 찍는 게 기본이다.

2007년부터는 연예인 외에 미혼모도 모델로 등장시키고 있다. 입양보다 미혼모가 친자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일이고, 그러려면 엄마가 용기를 갖고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취지다. 올 전시에선 미혼모 4명이 나섰다.

그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또 있다. 2008년부터 장애인올림픽에서 선수들의 사진을 찍어주는가 하면 다문화가정 사진전도 열었다. 지난 8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비영리 단체인 ‘조세현의 희망프레임’의 이사장이 됐다. 노숙자·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료 사진 강좌를 벌이는 일로 첫발을 디뎠다. 노숙자의 경우 수강 뒤 일부를 뽑아 서울시에 취업시키는 계획도 세웠다. “숙제가 많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사진은 제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잖아요.” 역시 ‘천사 촌장’이란 별명이 딱 어울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