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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 원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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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울」-. 이것은 독일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다. 「파울」은 게으르다는 뜻. 근면과 노력을 생명처럼 존경하고 있는 독일인들 사회에서 「게으른 자」란 호칭은 죽으란 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최대최악의 욕이 바로 파울이다.
「치킨즈」-. 이것은 영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욕이다. 「치킨즈」는 비겁자. 중세기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그들에겐 명예와 용기가 생활의 옥조로 되어있다. 그러기 때문에 비겁자로 몰리는 것보다 더 큰 모욕과 창피는 없다.
불란서인 같으면 살로란 말이 터부다. 원래 살로는 더러운 놈을 의미하는 것으로 악한을 그렇게 부른다. 단정과 우아를 사랑하는 불란서 국민들은 더러운 것, 추악한 것을 최악의 믿고 있다.
나라마다 이렇게 터부어가 된 욕이 하나씩 있다. 그 욕을 뒤집어 보면 그 나라의 사회풍속과 역사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무슨 말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가? 옛날 같으면 역적이란 말이나 염병이란 말이었겠지만 왕권이 무너지고 페니실린이 나온 현대에서는 욕이랄 것도 없겠다. 그 대신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공산주의자. 아무리 신분이 있고 세도가 있어도 일단 빨갱이란 팻말이 붙으면 끝장이 나는 판이다.
한 사람의 생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삼족이 떤다.
6·25동란을 치렀고,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삼고 있는 이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란 말은 죽으란 말보다도 더 치가 떨리는 일이다.
최근 일본상인(미쓰비시상사 서울 출장원)이 봉급인상을 요구하는 한국인 종업원에게 「공산당 같은 놈』이라고 호통을 쳐서 말썽이 일어났다. 공산당이 합법화되어 있는 일본 국내에서는 결코 그런 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니까, 공산당이라고 몰아치면 벌벌 떠는 한국인이니까 「매카시즘」의 수법을 쓴 것이 틀림없다. 이런데서도 일인들의 교활하고 비굴한 일면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인을 다루는 비결은 팽이처럼 때리는 것』이라던 왕년의 그 식민주의자들이 이제 색다른 비결로 우리를 억눌러 보려는 심산인가 보다. 낡은 「매카시즘」의 유물이 서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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