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김상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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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 30면

만일 주인공이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는 데다 소심하고 유치한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렇다. 인터넷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결과 메시지를 클로즈업하면 된다. 영화 ‘원티드’처럼 말이다. 나도 가끔 인터넷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보곤 한다. 마지막 글자의 받침을 다 치기도 전에 검색창의 자동완성 기능은 “보고 싶다 김상득”이란 검색어를 추천한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마지막 받침 ‘ㄱ’을 치고 엔터 키를 누르려는 그 짧은 순간, 내 기억의 검색 프로그램이 먼저 구동된다. 누가 이토록 나를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언젠가 신문 하단에 실린 사람을 찾는 광고가 떠올랐다. “득영아! 언젠가 태인에 누나를 보러 왔다가 바람만 맞고 갔다던데 어느덧 스무 해 아픈 세월만큼 내가 널 찾아 불러본다. 기타를 줬던 누나가.” 득영이를 찾는 그 누나처럼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일까? 영화 ‘건축학개론’의 광고 문구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납득할 수 없겠지만, 물론 나 자신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는 데다 소심하고 유치한 중년 아저씨도 한때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누구일까? “보고 싶다 김상득”이란 검색어가 생성되었을 정도로 나를 열렬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다닐 때 내가 겁만 주려다 그만 손바닥을 연필로 찔러 아프게 했던 남옥이일까? 잘못은 내가 하고도 오히려 화를 내니까 어쩔 줄 모르고 소처럼 울던 아이, 남옥이 아닐까? 아니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원주 작은집에 가느라 탄 기차 맞은편 자리에 앉았던 또래 여학생일까? 눈도 못 마주치고 딴청을 피우다가도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면 고개를 똑바로 들고 나를 보면서 해사하게 웃던 여자아이가 늙어 문득 나를 찾는 것일까? 아니다. 너무 어렸을 때니까 현실성이 없다.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 만났던 혜경이 같다. 우리 반에는 축구팀이 있었다. 반 대항 축구시합이 있을 때 주로 선수로 나가던 녀석들과 감독, 코치를 자청한 녀석들이 어울려 만든 팀이었다. 물론 나는 팀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여자학교 아이들과 모여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나는 억지를 부려 파티에 합류할 수 있었다. 혜경이는 거기서 만난 아이였다. 내성적이고 말수도 적었는데 어쩐 일인지 내게는 말도 잘하고 잘 웃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혜경이는 취직을 했고 나는 재수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풋사랑이지만 그때는 꽤 진지하게 사귀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이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듯이 우리는 헤어졌다. 둘 중 누구도 “헤어지자”라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그러니까 나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혜경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엔터 키를 눌렀다.

검색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보고 싶다’는 드라마 제목이고 ‘김상득’은 극중 납치범 이름이었다. 더 실망스러운 사실은 원래 그 악당의 이름은 ‘강상득’인데 어떤 착오에 의해 잘못 표기된 것이었다. 착각으로 즐거웠던 자 착각으로 괴로운 법. 누구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내게 문자가 왔다. “보고 싶다, 김상득!” 아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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