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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모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양의 대보름은 십이야-「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에 「십이야」라는 것이 있다. 「크리스머스」를 지내고 열 이틀 후인 정월 5일 저녁에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성탄의 여운을 즐기면서 노래도 부르고 여러 가지 「게임」도 한다. 요즘은 이 풍습이 많이 시든 느낌이 있지만, 십이야 풍습은 한가지 점에서 엄연히 지켜지고 있다. 그것은 「크리스머스·데코레이션」이 십이야로 끝장을 보고 다음 날 6일부터는 말끔히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연말에 세운 「크리스머스·트리」를 마치 무슨 신주나 되는 것처럼 정월이 다 가도록 대청에 모셔 놓고 제법 문화인 같은 얼굴을 해서 고소를 사는 시골뜨기들이 간혹 있다. 그런데 지난 10일 저녁까지도 서울시청 앞에 세워놓은 「트리」에 불이 켜져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그 유해를 볼 수 있어서 나라 망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무를 영구히 세워 두었다가 매년12월과 이듬해 정월 두 달 동안 불을 켜서 성탄을 축하하려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여러 본고장의 풍습과 다르다. 어차피 남의 풍습을 흉내내기로 하면, 완전무결하게 흉내내는 것이 좋고 어설피 주체성이니 뭐니해서 죽도 밥도 아닌 괴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원형이상으로 원형다운 것을 만드는 것-이를테면 원형「플러스」를 만드는 과잉모방은 금물이다.
대영제국의 위세가 당당할 때 본국서 못살고 식민지로 품팔이간 인간들이 본국의 양반들보다 더 영국신사 티를 냈다는 얘기가 있다. 2, 3개월 동안 「하와이」구경을 하고 돌아온 한인의 혀가 별안간에 꼬부라져서 김포공항세관리들 보고 미국인이 하는 영어보다 더 미국적인 영어를 지껄여대는 수가 있다는 것은 개화한국의 이름난 상징의 하나. 재일교포가 일인 뺨칠 정도로 일인행세를 해서 묘하게 국위를 선양하는 수도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인들의 풍습을 따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로마」인 이상으로 「로마」인 행세를 하던 과유불급이란 우리 성신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다. 시청광장에서 「크리스머스」장식의 흔적을 일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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