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리포트] 새 정권에 '인사 훈수' 이젠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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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새 정권이 들어서면 어떤 사람이 들어오나,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가에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나라 안팎의 앞날이 불안할 때는 그런 관심이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의 감놔라 배놔라는 좀 지나친 것 같다.

"인수위에 국정경험이 없는 교수가 많다, 어느 대학 출신이 많다"는 등 평가와 더불어 "인사탕평책을 쓰라, 출신.성분을 떠나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라"는 주문이 분분하다. 좋은 말로 풀면 "집권에 공이 컸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주지 말라"는 얘기고 쉽게 풀면 "니네들끼리만 나눠먹지 말라"는 소리다.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새 정권의 정책에 관해서도 "공약을 그대로 지키지 말라, 무리한 정책은 펴지 말라"는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멋있게 말하면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신중하게 정책을 펴라"는 것이고 잘라 말하면 "함부로 니네들 생각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새 정권이 이 같은 '충정어린 조언'대로 나라를 꾸려가야 한다면 무엇하러 그 난리를 치며 대선을 치렀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대선이란 대통령 후보와 그 주변이 가진 생각과 그들이 하겠다는 일을 국민이 평가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정권이 들어서기도 전에, 거기에 참여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다면, 그들이 하겠다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인터넷으로 추천을 받든 말든, 친인척이건 측근이건 누구를 쓰든, 새 정권의 인사에 관한 왈가왈부는 이제 그만 하자. 그렇다고 Spoils(엽관:獵官)제(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을 관직으로 보상해 주는 관행)로 가자는 게 아니다.

새 정권을 들어서게 한 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 원없이 그 뜻을 펼치게 하자는 얘기다. '누가'보다 '무슨 일을 어떻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 무리한 일을 벌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국회가 있지 않은가.

정치에도 통하는 시장경제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율과 책임이다. 하고 싶은대로 일을 하되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건 마찬가지다. 경제는 시장이, 정치는 선거가 책임을 묻는 게 다를 뿐이다.

하고 싶다는 일을 하게 해야 훗날 그 공과를 따질 것 아닌가. 그래야 앞으로 후보가 꼭 지킬 약속만 할 것이고, 투표자들도 후보의 공약과 그 주변 인물들의 성향을 신중하게 평가해 투표할 것 아닌가.

너무 순진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새 당선자에게 표를 찍지도 않고 이번 대선의 젊음의 돌풍으로 뒷자리로 밀려난 50대인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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