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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박근혜·문재인, 한반도 격랑 대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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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채인택
논설위원

대통령 선거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전은 국가와 미래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는 계기다. 후보들의 미래 비전과 정책공약 제시를 통해 나라의 갈 길을 온 국민이 다 함께 고민해보는 국가적인 축제다. 사실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내부적으로는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고, 국제사회와는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과는 긴장완화가 급선무다. 그러면서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번영도 이뤄야 한다. 이런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 대선은 그야말로 국민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사다.

 한국이 이러한 대선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도 동북아시아에는 격랑이 일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서해에 항공모함을 띄워놓고 함재기 이착륙 훈련 중이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시험비행도 한창이다. 지난달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앞으로 국내 민족주의 경향과 맞물려 동북아 패권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의 집권기간 중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그러면서 동북아에서 미국과 치열한 패권 투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G2(주요 2개국) 간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6일의 일본 총선에선 더욱 우경화한 자민당의 집권이 확실시된다. 차기 총리에 오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재는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헌법 제9조)을 폐지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한 1993년의 고노 담화도 수정할 태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시도다.

 서해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중·일의 이러한 움직임은 모두 차기 한국 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밀접한 두 나라와 군사·과거사 문제를 놓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해야 할 처지다. 차기 대통령은 대한민국 외교·국방의 수장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선 후보들은 앞으로 이러한 외교·국방 문제에 대한 무게 있는 글로벌 전략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후보도 아직 없다. 심지어 휴전선 너머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할 수 있는 로켓 발사시험을 하려는 데도 대응 원칙을 밝히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 전략도 마찬가지다. 지금 세계경제는 재정위기다, 재정절벽이다 해서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의 80%를 해외에 의존하는 무역국가 한국의 경제만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도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나름의 처방과 진단을 내놓는 후보는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위기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하는 후보도 없다.

 그러면서 후보들이 유세장·토론장·공약집에서 제시하는 공약은 한결같이 자잘한 대증요법뿐이다. 상당수가 복지 중심의 선심정책이다. ‘나를 뽑으면 이러저러한 혜택을 줄 테니 나에게 표를 달라’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함께 나눠 쓸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모든 후보가 벌 방법은 제대로 궁리하지 않고 쓸 데만 열심히 찾는 형국이다. 탕평인사·거국내각 등 제법 선 굵은 국민통합 방안이 나오는가 했더니 알고 보니 이 역시 자파 세력 모으기 전술의 일환일 뿐이다.

 대선전이 이처럼 미래 비전이 아닌 자잘한 문제에 매몰되면서 걱정이 앞선다. 당선자가 앞으로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일개 정파의 대통령이 될까 봐 우려되는 것이다. 예로 1%와 99%가 대치한다면 99%의 편을 드는 것이 당연히 득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1%의 소외된 부분도 방치해선 안 된다. 100%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고 나서야 그게 진정한 지도자다. 따라서 나라가 나아갈 방향이 아니라 당장 득표에만 신경 쓰는 후보는 국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표를 던져줄 지지자 그룹이나 그 정파의 이익을 대표하는 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큰 지도자가 되겠다는 후보라면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 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될 자잘한 선심공약보다 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더라도 외교·국방·국제경제 등 국민과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글로벌 비전과 관련 공약을 당당하게 만들어 내놓아야 한다. 이는 어떤 후보라도 당선자가 되면 당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국민은 표 사냥꾼이 아니라 미래 글로벌 비전을 가지고 앞으로 5년을 책임지겠다는 지도자에 목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