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장중함, 사물놀이로 푼다

중앙일보

입력

KBS-1TV에서 방영 중인 대하 사극 '태조 왕건' .

다음 회 예고편 방영이 끝난 후 올라가는 자막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KBS교향악단과 국립합창단이 배경음악을 연주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한국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임을 자부하는 연주단체가 TV 드라마 음악을 녹음하다니….

5년 전 대하 사극의 붐을 일으킨 '용의 눈물' . 당시만 해도 TV드라마에 쓰인다는 이유로 국내 연주단체가 연주를 기피하는 바람에 배경음악은 키예프 심포니와 합창단이 녹음해야만 했다.

'용의 눈물' '왕과 비' 에 이어 '태조 왕건' 의 음악을 맡은 작곡가 김동성(金東聖.46.경희대 예술.디자인학부 포스트모던 음악과 교수) 씨. 그가 TV드라마 배경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은 주인공이다.

" '태조 왕건' 을 부탁받을 때 KBS교향악단이 연주할 거라는 말을 듣고 '문화적인 일대 사건' 이라고 생각해 즉시 수락했지요. KBS교향악단 단원들이 제 음악을 평가해 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

"컴퓨터나 전자악기를 배제하고 국악장단이나 음계를 흉내내는 상투적인 사극 음악에서 탈피하려고 했어요. 현악합주로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성공한 셈이지요. '태조 왕건' 의 하이라이트는 CD에 담아 출반할 예정입니다. "

어렸을 때부터 팝과 재즈를 즐겨들었던 그는 경희대 작곡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 삼아 나이트클럽과 호텔 로비에서 재즈 밴드의 멤버로 돈을 벌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강태환.김대환 등 프리 재즈의 명인들과 함께 서울 원서동 공간사랑에서 매달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했다. 또 동부이촌동 서울 스튜디오에서 건반악기 주자 겸 편곡자로 활동했다. 그렇게 해서 유학 자금을 마련한 그는 쾰른음대와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전공했다.

"옛날에는 매일같이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는데, 요즘엔 오전에도 작업 능률이 높아요. 작업은 주로 집에서 합니다. 담배는 3년 전에 끊었어요. 악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차를 마시고 그래도 안되면 산책을 나갑니다. "

김씨는 틈만 나면 영화관에 들러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배경음악보다는 주로 영상에 집중해서 보는 편이고 라이브 카페같은 곳은 '귀가 고통스러워' 절대 가지 않는다.

콘서트 무대에선 주로 편곡 작업을 맡아온 그가 요즘 신작 하나를 완성했다. 오는 10월 13일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에서 육군본부 군악대와 사물놀이 한울림이 초연할 '판굿' . 수정작업을 거듭해 사물놀이 협주곡의 대표작으로 만들어 볼 계획이다.

그는 한동안 뜸했던 가요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강타.신효범.포지션의 새 앨범에서 20년 경력의 편곡 솜씨를 발휘했다.

오는 10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아주 특별한 만남' 을 통해 김민기씨의 노래들을 관현악 버전으로 바꾼 '클래식 김민기' 를 선보일 계획도 잡아놓았다.

김씨의 꿈은 '한국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 '한국의 존 윌리엄스' 가 되는 것. 한국을 대표할 만한 뮤지컬을 작곡하고, 런던필하모닉의 연주로 영화음악을 녹음하고 싶단다.

"뮤지컬은 가요의 확대판이 아닙니다. 극적인 요소를 음악화하는 작업이 중요하거든요.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데 재즈만큼 좋은 교재도 없어요. 편곡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나빠요. 편곡자를 단순히 악보를 만들어 주는 사람쯤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의욕을 상실할 때도 많아요. "

김씨가 속에 숨겨둔 꿈이 또 하나 있다. 지휘봉을 직접 잡아보는 것.

"사실 좀 아쉬워요. 그래서 지휘를 제대로 공부해 언젠가는 제 음악을 직접 지휘해볼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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