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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먹는 입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에는 문자가 없다는 「유머」가 있다. 즉 숫자만 나열해 놓은 전화번호부의 경우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스토리」도 언어도 없는 숫자의 연속 물이 홍루파 「라디오」극이나 「코미디언 쇼」 보다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요즈음 「매스콤」을 뒤덮는 입시합격자 번호이다.
이 숫자 발표를 에워싸고 「라디오」방송국 마다 치열한 보도 경쟁이 붙었다. 그리고, 정규 「프로」까지 제쳐놓은 이 합격자 발표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스폰서」들은 「스폰서」대로 쟁탈전을 벌였다.
입시 경쟁이 빚어낸 연쇄 반응이다. 입시 전쟁이란 표현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몸소 실감했다. 평범한 「숫자」에 지나지 않지만 이 숫자(번호) 뒤의 인생 극엔 수천 수만의 소설보다도 더 파란 많은 사연이 적혀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맛을 한층 더 씁쓸하게 하는 것은 입시극의 치열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전쟁이 이성을 상실한 난전이라는데 한층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비근한 예로 중학 입시가 있었던 날 아침. 엿장수들이 횡재를 했다. 서울 장안에 엿이 동이 날 만큼 경기가 좋았다.
입시 아동에 엿을 먹이면 합격한다는 미신 때문이다. 엿은 끈적끈적 해서 잘 붙는다.
그래서 엿을 먹이면 시험에도 붙을 것이라는 원시적인 사고 방식이다. 소위 가정 교사를 두고 일류 교에 넣기 위해 그 찬란한 「과학교육」을 시키고 있으면서도, 그 부형들의 「멘틀」은 수십 년 전 서당교육을 시키던 그때에서 한발 짝도 발전해 있지 않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떡국처럼 미끄러운 음식이나 어감이 나쁜 미역국 같은 것을 먹이려 들지 않는 학부형의 심정엔 그래도 동정이 간다.
하지만 엿까지 사 먹이는 그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자녀 교육열과는 이율 배반적 현상이다.
그와 같은 비합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한때 입시공부를 하다 「노이로제」에 걸린 아이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담당 의사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 보다도 「부형」이 오히려 정신병치료를 받아야할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 입시의 전초전을 겪은 우리의 소감은 이 사회가 점점 광적으로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성을 잃은 시대! 그야말로『엿이나 먹어라』는 상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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