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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아래 갈증처럼|고국소식기다리는 [월남전선]|여성편지는 「경매」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월남전선에서 분전하고있는 맹호·청룡·비둘기부대 용사들은 감질나는 고국소식에 목이타고 있다. 전투부대파병으로 군사우편이 월남땅에 뻗은지 50여일-맹호(육·군)용사들이 고국에 보낸 편지는 13만9천여통인데 고국서 날아온 편지는 고작 3만8천통-. 청룡(해병)의 발신은 8만7천통에 수신은 2만5천통-.

<오는건 가는것의 겨우 4분의 1뿐>
4대 1의 동포애에 비친 전후방의 거리에 염천 아래서 용사들은 갈증마저 느끼고 있다. 병사들이 편지를 날려 회답을 받아 보기에도 2주일이상 걸려 더욱 감질이 난다.
하오 5시만되면 각부대의 군사우체국 막사 앞은 편지를 기다리는 장병들로 붐빈다. 항공기에서 푼「파우치」(행포)를 실은 전령차가 도착하면 다투어 편지 분류에 앞장, 편지를 받은 병사는 신바람이 나고 편지가 없는 병사는 시무룩해 돌아간다. 맹호부대 김해동목사는 이 광경을『합격자 발표때의 희비와 같다』고 했다. 군사우편의 이색은 고추장소포-맹호부대에선 한달만에 2백여건의 소포를 받았는데 고국서 정성들여서 보낸 고추장 된장단지가 단연 인기-.
고국에서 온 편지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여자편지.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동료의 성화때문에 돌려 읽히는데 경매(?)까지 붙어 한번 읽는데 담배 한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였던지 부산의 한 여대생은 온 부대장병을 상대로 빨간봉투의 편지를 보내와 환호가 올라간적도 있었다.

<「엄동 설한…」에 폭소도 터뜨리고>
청룡부대의 신목사는 서울의 각 여대에 장병이름 5백명씩을 적어보냈다. 본인 이름이 적힌 여대생편지를 받고 사병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한번씩 꼬박 편지를써서 제1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향에 편지를 쓴 병사도 있다. 송금을 못받았다는 편지가 가장 아찔한 소식. 어떤 장교는 고향의 아내로부터 김장걱정까지 곁들인 「월동바가지」편지를 땀을 뻘뻘 흘리며 읽는 맛도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엄동설한에 일선고지에서 얼마나 수고하십니까』라는 뚱딴지도 있었다.

<생전처음 남성에 편지쓴 여교사도>
어느대위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고 울고 말았다.
『우리반에서 월남파병가족어린이는 「정미」양 한사람이었습니다. 어제 맹호부대 노래를 부르다말고 「정미」양이 와락 울음을 터뜨리지 않겠어요. 「정미」양에게 물어보니, 「아버지가 월남에서 얼마나 더우실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와요」였습니다…』 이대학생 정숙경양은 대학「카니벌」때의 가장 행렬에서 청룡·맹호군복을 입고 행진하여 1등을 차지했다는 내용을 보내와 온 장병들이 돌려가며 읽고있었다.
지휘관에게 가정통신이 쌓였다. 어떤 아버지는 『소대장님, 내 아들이 전쟁터에서 비겁하지 않도록 채찍질해 주십시오』, 어떤 어머니는 『내 아들을 잠을 재우지 마십시오. 잠을 자다간 「베트콩」의 밥이 될테니까요』-전남영암의 염산국민학교 교사 문이정양은 난생처음으로 남성(파월장병)에게 편지를 쓴 것을 남선생이 살짝 읽어봤다하여 교무실에서 엉엉울었다는 사연이 가장 멋있는 편지로 꼽혔다. <월남[퀴논]에서 최규장 특파원>

<파월장병들에게 부치는 편지 「주의사항」네 가지>
①겉봉에 영문 쓰지 말 것
②소포와 편지는 동시에 보낼 것
③사진은 등기로 부치지 말 것
④발신인 주소·성명은 뒷면에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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