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823년, 미국의 「센트루이스」의 지방재판소에는 백포로 눈을 가린 판사하나가 재판을 하고 있었다. 제출된 서류는 전부 재판소서기가 읽어 주었고, 법정을 드나드는데도 비서들의 부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맹인도 아니었고, 부상입은 판사도 아니었다.
그는 남보다 한결 안광이 빛나는 「베크」 판사이다. 그런데도 그는 14년간의 판사생활에 줄곧 일포로 눈을 가리고 재판을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소송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공평하게 재판을 처리하기 위한 처사였다. 판사도 인간이기에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재판을 하면,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압력을 받게 된다. 결국 「베크」판사는 공평무사한 재판을 하기위해 스스로 맹인노릇을 했던 것이다.
반드시 판사가 백포로 눈을 가리고 재판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는 할수 없어도 그 정신만은 본받을만한 일이다. 특히 후진사회의 사법권은 여러면에서 시련을 겪고 있다. 「행정권의 비대」때문에, 언제나 사자편에 서서 재판을 하는 「이소프의 만화」의 여우처럼 될 경우도 없지않다. 그러기에 우리도 모든 판사들이 「베크」씨처럼 눈을 가리고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않는 재판」을 바라고 있다. 「포샤」와 같이 재주를 부리는 명판관보다도, 「베크」씨같은 공평한 판관이 아쉽다.
지난 7일 서울고법은 조국수호협의 등록을 거부한 공보부의 처사가 하나의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헌법이 행정부 마음대로 녹피에 가로왈격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는 하나의 증거를 남긴 것이다. 법을 불신하는 사회는 마치 궤도없는 열거처럼 위태롭다.
다른것은 다 부패한다 하더라도, 독선적인 권력이 활개를 친다하더라도 법이 시퍼렇게 살아 건재하는동안 우리는 두다리를 뻗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결사의 재판」를 재인식한 서울고법의 이번 판시는 우리의 마음을 한층 든든하게 한다. 불신시대라는 말이 현대의 대명사처럼 쓰이고있는 오늘날 「법」만이라도 믿고 살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줄로 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