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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동양화의 젊은 파수꾼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양화, 혹은 한국화 분야는 쇠퇴하는 장르다. 우선, 세태가 선비정신을 숭상하지 않는다. 그림속에서 문자향이니 서권기(書券氣) 니 하는 고고한 기운을 느낄 감성들이 없다.

1970년대의 산업화, 서구화 이후 젊은 동양화 작가들은 활로를 찾기 위한 모색과 실험을 계속해왔다. 그 내용은 대개 서양화 재료와 기법의 도입으로 요약된다.

이달 들어 '동양화의 현대적 변용' 이라는 화두에 빛을 던지는 유망한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지난 8~17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열린 이성현(41) 전. 필획이나 여백이라는 동양화 화론의 핵심적 명제에 정면으로 대결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엔 "선이 전혀 없는 동양화도 가능하다" 며 점과 농담의 변화만으로 정감있는 풍경화를 내놨다. 재료는 전통 수묵화, 경력은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이니 정통파의 정면돌파 시도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서울 소격동 아트스페이스 서울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석철주(51.추계예술대 교수) 초대전. 한지에 서로 다른 바탕색을 두 겹으로 입히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맹물을 적신 붓으로 윗 바탕색을 지우는 새로운 기법을 구사한다.

아크릴 물감을 썼지만 스미고 번지는 효과가 먹물과 같은 깊고 은은한 맛을 낸다. 청전 이상범의 문하에서 전통 산수화 수업을 한 필력으로 일필휘지 작법을 구사한다.

또 하나는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10월 7일까지 열리는 정종미(44) 씨의 '오색산수전' . 전통적 재료와 제작기법 전반을 학문적.실전적으로 연구해온 깊이가 돋보이는 전시다. 전통한지와 천연 염료를 써서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 불화, 조선 민화 등의 제작기법을 동원한 '전면적 복원' 을 시도하고 있다.

형상은 미니멀한 추상에 가깝지만 색조의 은은함과 깊이는 최고수준이다. 서울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우리 그림의 색과 칠' (학고재) 이라는 독보적인 저서도 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의 깊은 연구가 한국화 분야의 새로운 중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조현욱 기자
동양화, 혹은 한국화 분야는 쇠퇴하는 장르다. 우선, 세태가 선비정신을 숭상하지 않는다. 그림속에서 문자향이니 서권기(書券氣) 니 하는 고고한 기운을 느낄 감성들이 없다.

1970년대의 산업화, 서구화 이후 젊은 동양화 작가들은 활로를 찾기 위한 모색과 실험을 계속해왔다. 그 내용은 대개 서양화 재료와 기법의 도입으로 요약된다.

이달 들어 '동양화의 현대적 변용' 이라는 화두에 빛을 던지는 유망한 전시가 잇따라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지난 8~17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열린 이성현(41) 전. 필획이나 여백이라는 동양화 화론의 핵심적 명제에 정면으로 대결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엔 "선이 전혀 없는 동양화도 가능하다" 며 점과 농담의 변화만으로 정감있는 풍경화를 내놨다. 재료는 전통 수묵화, 경력은 홍익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이니 정통파의 정면돌파 시도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서울 소격동 아트스페이스 서울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석철주(51.추계예술대 교수) 초대전. 한지에 서로 다른 바탕색을 두 겹으로 입히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맹물을 적신 붓으로 윗 바탕색을 지우는 새로운 기법을 구사한다.

아크릴 물감을 썼지만 스미고 번지는 효과가 먹물과 같은 깊고 은은한 맛을 낸다. 청전 이상범의 문하에서 전통 산수화 수업을 한 필력으로 일필휘지 작법을 구사한다.

또 하나는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10월 7일까지 열리는 정종미(44) 씨의 '오색산수전' . 전통적 재료와 제작기법 전반을 학문적.실전적으로 연구해온 깊이가 돋보이는 전시다. 전통한지와 천연 염료를 써서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 불화, 조선 민화 등의 제작기법을 동원한 '전면적 복원' 을 시도하고 있다.

형상은 미니멀한 추상에 가깝지만 색조의 은은함과 깊이는 최고수준이다. 서울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 '우리 그림의 색과 칠' (학고재) 이라는 독보적인 저서도 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의 깊은 연구가 한국화 분야의 새로운 중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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