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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생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립대학 선생들이 교양 과목을 고쳐 꾸며야겠다고 건의해서 화제다. 고치되 국어와 영어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무슨 소리인지 썩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교양과목의 중점은 처음부터 국어와 영어에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첫 한햇동안 그 많은 시간수의 국어와 영어수업을 거치고도,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면, 그 두 과목이 경시되어온 탓이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이 틀렸다는 얘기가 된다. 어학 이외의 교양과목 시간 수를 줄여서, 국어·영어시간을 늘리자는 것이라면, 우리 대학 교육의 대본을 그르치는 것.
국어를 중·고교 6년에 대학 1년을 더해서도 신문 한장 제대로 읽지 못하고, 학술적 논문은 고사하고 어른이나 친구한테 편지 한장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어와 같은 햇수에,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소비하고도, 지나가는 인사말하나 하지 못하고「이소프」의 우화 한 권을 읽어내지 못하는 딱한 학사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정책은 시간 수를 늘리는데 있지 않고, 언어학습의 원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교수법의 도입에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학의 교양과목의 의의를 도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대학제는 해방전의 일본식을 미식으로 크게 전환시킨 것이다. 그러나 학사과정 전체를 교양과정으로 생각하고 전공은 석사과정으로 미루는 미식이 우리 실정엔 맞지 않는다고 해서 대학 1학년 한햇동안에 일반 교양과목을 강제로 이수시키는 정도로 이미「현실화」해놓은 것이 우리제도다. 우리가 미식을 따르는 한, 교양과목은 더 이상 손댈 여지가 없다. 손을 댄다면 국어, 영어뿐 아니라 자연과학, 역사, 사회과학, 철학 따위, 소위 일반 교양과목을 2학년까지 더하도록 고쳐야할 것이다.
나라와 학부형이 모두 가난한 처지에 있으니, 교양과목을 없애고 곧장 전공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여론의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이 생각은 자칫하면 대학을 3년으로 줄이고 웬만한 대학은 모조리 전문학교로 격하시키자는 복고론으로 급전직하하기 쉽다. 교양과목은 우리대학의 생명-조심해서 귀하게 다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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