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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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하늘엔 기구만 많고, 색다른 기구가 올라 갈 때마다 소심한 시정인들의 가슴엔 수심이 늘어간다. 「애드벌룬」이 아니라, 소위 「트라이얼벌룬」이라는 것. 우리끼리 합의하면 능히 할수 있는 일이지만, 여론을 타진하기 위해서 한번 띄워보는 기구, 가령 「한글전용법」 같은 것은 그 나름의 쓸모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원한대도 상대가 들어주지 않으면 이루어질수없는 기구를 연거푸 고안해내서 국내·국외에서 띄워대는 것은 큰문제이다. 이젠 누가 올렸는지, 또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과연 그런 얘기를 했는지, 도무지 확실치 않지만, 동북아동맹이라는 기구가 있었다.
그것이 반공에 도움이되리라는 짐작은 가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적다.
그다음 아·아회담에 참석한다 안한다하는 기구의 운명도 매우 기구하다. 중공이 판을 치고, 북괴가 나와앉는 자리에 우리가 나간다는 것이 엄청난 정책전환이고 초청을 받을 가능성의 검토도 부실했다.
연례행사로 우리문제를 「유엔」에 올리는 것을 고쳐 생각한다는 기구도 그렇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과 직접관련된 이 종류의 기구가 올라가면 겨레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그 귀추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기 마련인데도 기구를 올리는 양반들은 극히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을 넣었다가, 끌어내렸다가 그야말로 자유자재다.
「메테르니히」시대의 재래를 방불케하는 회의와 회담을 촉구하는 기구는 또 무엇인가. 벌써 참석할 생각이없다고 거절한 나라가 나온 동남아외상회의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허공에 뜬 기구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것도 오히려 부족하다는듯이 최근엔 한·미·일 3국회담이라는 새기구가 [워싱턴]상공에 올라가서, 다시 긴장-그런회담이 따로 필요치 않기때문에, 정식으로 제의해오면 거절하겠다는 일본측의 소식통담이 전해져서 창피한 생각이 앞선다. 외교수단으로서의 회의가 춤추기를 멈춘지 오래다. 외교는 조용히, 그리고 착실한「맨·투·맨」작전으로. 기구외교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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