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대선 이후 경제가 걱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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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영욱
논설위원
경제전문기자

알렉산더 대왕이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 하지만 적군의 숫자가 열 배나 돼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사원에 들러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런 후 손에 동전 하나를 들고 병사들에게 외쳤다. “기도의 영험을 시험하겠다. 동전 앞면이 나오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패배할 것이다.” 대왕은 비장한 표정으로 동전을 던졌다. 병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동전을 주시했다. 앞면이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사기는 충천했고, 적을 대파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에서 병사들은 이구동성이었다. “신이 기도를 들어줬다”고. 하지만 알렉산더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 그 동전은 양쪽 다 앞면이었는걸.”

 이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대선 이후 경제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 난 이번 대선에 큰 관심이 없다. 박근혜와 문재인, 빅(Big)2의 차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누가 되든 경제 살리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설령 용 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쉽지 않다. MB정부의 5년간 경제성적표를 보면 알 수 있다. 경제대통령을 자임했는데도 연평균 성장률이 3%가 안 된다. 그렇다고 MB정부가 특별히 잘못한 게 있어서는 아니다.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훨씬 더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가 결정적인 이유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다음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은 얼마 전 ‘제로(0) 금리’ 정책을 2015년 중반까지로 다시 연장했다. 지난해 8월 이 정책을 발표할 때만 해도 시한은 내년 중반까지였다. 그러다 다시 내후년 말까지로 연장했다가 최근 재수정한 것이다. 그만큼 미국 경제의 회복이 예상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향후 3년간은 미국 경제가 안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설령 예상대로 된다고 해도 미국이 갈 길은 멀다. 2015년 후반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는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이전의 성장세를 되찾으려면 2019년은 돼야 가능하다고도 한다. 다음 5년의 우리 경제도 험난할 것이라고 보는 건 그래서다. 차기 대통령은 임기의 대부분을 위기의 경제와 씨름하느라 보낼 것이다. 성장률도 잘해야 연평균 3%대에 그치지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경제가 나빠지면 분열과 대립이 심화된다. ‘내 몫’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분출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가장 걱정이다. 우리는 성장률 1%에 일자리 7만 개가 왔다 갔다 하는 나라다. 지금의 고용률(60%)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쏟아지는 생산가능 인구의 60%를 소화하려면 연 5% 성장은 돼야 한다. 그런데도 3% 성장하면 1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복지재원이 더 들어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절실한 게 위기의 리더십이다. 승리하기 위해 동전의 양면을 모두 앞면으로 만드는 알렉산더의 리더십 말이다. 하지만 빅2에게선 이런 리더십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착해빠진 사람’으로만 보인다. 게다가 두 후보 모두 신뢰, 정직, 원칙만 강조한다. 이런 리더십으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누가 되든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다.

 그래서 부탁이다. 당선에만 주력하지 말고 나라의 장래를 더 걱정하자고. 그래서 제언이다. 분배에만 주력하지 말고 성장에 더 역점을 두자고. 오해 말기 바란다. 나 역시 기업의 모리배 관행이 시정돼야 하고, 복지가 한층 향상돼야 하고, 빈부격차는 개선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주장하는 건 성장을 통해서는 분배의 공정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공평한 분배로는 성장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목전의 성장에 일희일비하거나 당장 경기를 부양하자는 건 결코 아니다. 이보다는 성장잠재력의 확충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건 개인이나 나라나 똑같다. 잠재성장률을 연 5%대로 높이는 것, 이게 빅2의 첫 번째 과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3.8%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