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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져도 [광명]은 남아…|[불행]이 [불행]구하겠다고|아버지 약속해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위암이라는 절망의 병상에서도 "불행한 나는 숨져가지만 내 눈이 불행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이라고 자신의 눈동자를 서울대병원에 기증하고 숨진 김영혜(20)양은 [솔베이지]의 노래를 즐겨 부르던 꿈많은 소녀였다.
소화불량과 십이지장충 인줄만 알고 병원을 다니기 1개성상. 지난 7월22일 마지막으로 서울대부속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은 김양은 위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말았다. 김양의 부친 김능환씨는 이 사실을 김양에게는 절대비밀로 해두었다.
그러나 김양은 죽음의 그림자가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음인지 9월20일쯤 아버지 김능환씨를 자기곁으로 조용히 불렀다. 하얀 병실밖, 샘나도록 파란 가을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던 김양은 문득 "나는 불행하지만 내가 불행한 다른사람을 위해 할 일은 없을까요?"…물었다. 김씨는 이 아이가 죽으려는가 싶어 마음이 선뜻했다.
김양은 "아버지, 언젠가 신문에서 어느 외국여인이 자기가 죽으면서 눈알을 병원에 기증하고 죽어 불행한 사람이 눈을 다시 뜨개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는데 나도 죽으면 내눈을 불행한 사람을 위해 기증할테야. 아버지 약속해주어"라고 유언을 하는 것이었다.
이날 아버지는 이사실을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하고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굳게 손을 잡고 약속했던 것이다. 김양은 정란여중을 다닐 때 특히 노래를 잘불러 귀여움을 받았다.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 애처로운 [멜러디]에 자신도 곧잘 침울해지는 [센티] 한 소녀였다.
김양은 또한 말이 적고 차분하면서도 남몰래 일하기를 좋아하던 성품이었다. 김양이 정란여중3학년에 다닐때 였다. 하학길로 신문로입구에 이르렀을때 웬 장님이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를 안내하던 길잡이를 놓치고 어쩔줄을 몰라하는 것이다.
김양은 같이가던 학우들을 보내고 장님곁으로가서 행선을 물었다. 안양다리밑이라 했다. 김양은 그길로 장님을 팔에끼고 영등포행 버스를 탔다. 다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그를 무사히 안양까지 데려다 주고집에 돌아왔을때는 밤 11시가 넘었다. 부모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그는 장님얘기를 안했다.
얼마후 김양의 어머니가 학교에가서 딸의품행을 담임선생(하주용)과 상의했을때 비로소 학생들의 증언으로 이 미담이 밝혀져, 학교에서는 표창을 했다. 이때 벌써 김양에게는 [장님에대한 깊은 동정심]이 싹텄을 거라고 당시의 담임 하선생은 말한다.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는 자기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을 늘민망하게 생각하고 일부러 눈을감고 잠든체하여 가족들을 잠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아무리 아파도 겉으로 내색을 안하고 꾹 참기만 했다. 그녀가 7월22일 불치의병으로 판명된 것은 그녀의 이런 참을성의 결과였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녀의 아버지 김능환는 말한다.
숨을 거두기전인 지난 10월14일 다시한번 20여일전에 아버지에게만 살짝말한 [눈의기증] 을 실오라기 같은 소리로 말할 때 가족은 더욱 슬펐고 임종을 지키던 의사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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