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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는데 치근덕대면 범칙금 8만원 짝사랑과 스토킹의 차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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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 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붙여 오겠지…’. 1970년대 송창식이 불러 히트한 노래 ‘한 번쯤’의 첫머리다. 귀갓길에 뒤를 졸졸 따라오는 총각이 은근히 맘에 들어 어서 말을 걸어 주었으면 하는 처녀의 심정이 담겨 있다. 2절은 청년의 입장으로 바뀐다. ‘한 번쯤 돌아서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 보겠지….’

 그러나 이미 40년 전 풍경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밤길에 뒤를 따르는 남자가 전자발찌까지 찬 성폭행 전과자나 연쇄살인범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2절의 ‘겁먹은 얼굴로’란 표현에서 당시에도 여성의 불안감은 예측 가능했던 듯하지만, 흉악범이 판치는 지금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짝사랑은 힘들게 마련이라 해도 요즘 짝사랑, 특히 남성 쪽은 성범죄자 같은 강력범과 자신을 차별화해야 하는 부담을 하나 더 안게 됐다.

 경찰청이 입법예고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상대방이 명시적인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지속적으로 만남이나 교제를 요구하는 ‘스토킹’을 하면 범칙금 8만원이 부과된다.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해 기다리기도 스토킹이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이은상 작시 현제명 작곡 ‘그 집 앞’) 같은 가곡에서도 ‘발이 너무 오래 머물면’ 8만원짜리다. 짝사랑을 노래한 박효신의 ‘동경’처럼 ‘혹시나 그대 알고 있나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매일 그대의 곁에서 맴돌았다는’ 것을 상대에게 고백하는 순간 경찰서에 바로 신고가 들어가 범칙금을 물지 모른다.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게’라는 이승기의 노래를 잘못 실행에 옮겼다간 범칙금 정도가 아니라 성추행 혐의 고소감이다.

 원래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짝짓기는 작게는 자기도 아까운 먹이부터 크게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일단 성공해도 ‘사랑은 시간을 가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가게 한다’는 서양 속담을 또다시 입증하지 않으려면 세심한 애정 관리가 필요하다. 어느 경우든 간에 사랑과 폭력은 엄격히 구별돼야 할 것이다. 울산 자매 살인사건 같은 끔찍한 범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혹시 바뀐 경범죄법이 한국 총각들의 초식남(草食男)화 현상에 일조하지는 않을까. 어쨌든 짝짓기 상대 선택을 암컷이 주도한다는 진화론의 ‘성(性) 선택설’은 더 힘을 받게 됐다.

 하긴, 짝짓기가 꼭 이성 간에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정치판에서도 짝짓기·짝사랑을 둘러싼 파문이 빈번하다. 그러나 이번 대선 국면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는 적어도 경범죄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개정 시행령이 내년 3월 22일 시행될 예정이라니까 말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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