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제 고립보다 체제결속 급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쉽게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는 2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예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시점이나 정세 흐름에 맞지 않는 듯한 결정인 데다 의도 파악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선 중국과의 관계가 그렇다. 북한이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명의로 “실용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발표한 건 1일 오후 5시쯤이다. 그런데 하루 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을 접견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친서도 전달받았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자제 요청이 담겨 있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결국 김정은은 이제 막 닻을 올린 시진핑 주도의 중국 새 지도부의 뒤통수를 친 셈이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북한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던진 것이란 해석도 내놓는다.

 미사일 발사 강행은 내년 1월 출범할 미국의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와의 관계도 꼬이게 만들 게 분명하다. 당국자는 “북한이 2기 오바마 행정부와 협상을 앞두고 몸값을 올리려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대화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안다”고 말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한국 대선을 놓고 보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은 통상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로 나타난다. 북한은 이번 대선에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인 개입과 후보 비방전을 해왔다. 그러다 이번에 자신들의 뜻과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도발을 선택한 건 뜻밖이란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처럼 북한이 국제·대남 요인의 부담을 무릅쓰고 발사를 강행하려는 건 체제결속용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발사 예고 담화 첫 줄에 ‘김정일의 유훈’을 언급하고, 예정일을 오는 10일에서 22일 사이로 잡은 건 김정일 1주기(17일)에 맞춘 조포(弔砲) 성격을 부각시킨 포석이란 풀이다. 고위 당국자는 “김정일에 대한 제수용품으로 (장거리 로켓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취임 1주년(30일)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다. 김정일이 공언한 ‘2012년 강성대국 진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도 감지된다. 북한 담화는 “위성발사는 강성국가 건설을 다그치고 있는 우리 인민을 힘있게 고무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4월 김일성 출생 100주년에 맞춰 로켓을 쏘아 올리다 실패한 뒤 불과 8개월 만에 발사를 재개하는 건 내부 정치 일정에 쫓겼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