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주까지 … ‘사회책임’ 없는 SRI 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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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팥소 없는 찐빵’.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를 표방하고 나선 SRI펀드에 ‘사회책임’이 빠졌다.

 29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설정액 10억원 이상 국내 SRI펀드 60개의 투자 종목을 분석한 결과(9월 3일 기준) 일반 주식형 펀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 비중이 큰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평균 5~6개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위 이내의 대형주였다. 또 이들 대형주가 SRI펀드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평균 35%를 웃돌았다.

 종목별로는 대부분(55개)의 SRI펀드가 삼성전자에 투자했다. 보유 비중도 평균 15%에 육박했다. 이어 현대차(53개)·기아차(40개)·LG화학(40개)·현대모비스(27개) 등에 주로 투자했다.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 가운데 POSCO를 뺀 나머지 종목과 정확히 일치한다. POSCO는 철강 시장 불황으로 다른 일반 주식형 펀드에서도 투자 비중이 크지 않다. LG화학(6위)은 시가총액이 20조원을 웃도는 대형주다.

 SRI펀드는 기업의 실적이나 재무구조 등 일반적인 투자 기준 이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중에서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이는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을 말한다. 유엔 사회책임투자 원칙(UN PRI)에서 투자의사 결정 시 고려하도록 하고 있는 핵심 평가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평가해 투자 대상을 선별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일수록 장기 성과가 좋다는 운용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만 놓고 보면 SRI펀드와 일반 주식형 펀드 사이에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 특히 일부 SRI펀드는 GKL이나 파라다이스 등 소위 ‘카지노주’에 주로 투자하기도 했다. 오염 물질 방출이나 담배 제조, 도박, 주류업체 등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SRI펀드도 수익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수익률을 위해 원칙에 어긋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NH-CA자산운용의 양해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재무 성과를 보고 기업을 선별한 후 ESG 기준에 따라 등급을 매겨 등급이 낮은 곳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며 “ESG 기준으로 먼저 적극적으로 대상을 선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반 펀드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장기 성과를 보면 분명히 SRI펀드가 낫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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