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무사'로 돌아온 로맨틱 가이 정우성

중앙일보

입력


영화배우라는 단어가 좋다는 정우성. 스크린에서 반항적이고 고독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그의 실제 이미지는 다중적이다.남들보다는 조금 덜 평범했던 10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델학원에서 배우의 꿈을 키웠던 20대 초반,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연기로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2년여 간의 준비 끝에 아홉 번째 영화에 출연하면서 감독으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한국의 배우 정우성과 함께 호흡한 140분의 기록.

정우성이란 사람을 만났다. 직업은 영화배우, 올해 스물여덟 살이다. 그는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듯한 체격을 지녔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그에 대한 첫 느낌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전날 서해의 이름 없는 섬에서 특집 프로를 촬영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한 탓인지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며칠째 자란 수염은 인상을 까칠하고 초췌해 보이게 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큼지막한 프라다 검은 가죽 색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곤 말없이 쳐다봤다.

저는 10대에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그는 평범하지만은 않다. 그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장 소중하고도 즐거운 추억거리를 주었다는 그의 10대 시절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경험들이다.
10대 초반에 이미 주종을 가리지 않고 즐겨 마셨던 술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친구의 어두운 자취방에서 소주·양주·맥주·샴페인·막걸리를 가리지 않았고, 안주는 새우깡과 라면 국물이 고작이었다. 그때의 술맛을 잊지 못한다는 그는 막걸리를 먹고 취해 친구의 부모님도 몰라본 다음부터는 아직까지 막걸리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맛도 몰랐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이기에 따라 먹은 거예요. 그때 저는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요.”
2남 1녀 중 막내인 그는 현재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10대에는 다 그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이 판단하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아이들의 행동만을 가지고 나무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행동을 보지 말고,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게 중요해요. 행동만 보고 불량소년으로 몰아붙이면 그 아이는 점점 더 나쁜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자유로운 생활을 갈구하며 반항적으로 살아왔던 10대 시절, 큰 잘못 저지르지 않고 버텨낸 건 부모님 덕분이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은 그를 믿어주었다. 형은 있었지만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어려서부터 그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행동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여고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부터 보세옷 가게 점원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 초반에는 지금보다 말을 더 적게 했고, 낯을 많이 가렸어요. 그리고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싫어했죠. 거의 외톨이로 살았죠. 특히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 속에 끼는 것을 더 싫어했으니까요.”
그래서 또래 친구들보다는 아는 형들과 더 많이 어울려 다녔다. 나이트클럽도 자주 갔다.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이트클럽으로 출근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
“배우가 되기 전 한창 나이트클럽에 다닐 때 연예인들이 놀러 온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안 좋았어요. 저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는 것말고도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을 텐데 왜 이런 곳에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의 기억이 너무 안 좋게 남아 나이트클럽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가는 게 전부예요. 노래방은 자주 가죠.”
어쩔 수 없이 나이트클럽에 가더라도 춤은 안 춘다. 룸에서 자리를 지키는 스타일이다.

네 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8년간 연애


두 사람은 ‘살면서 이건 꼭 해야 돼’라는 식으로 무엇을 규정짓지 않는다. ‘오래 사귀었으니 결혼해야 된다’고 서로를 구속하는 스타일은 더군다나 아니다. 여자친구에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소문난 그는 여자와 카페에 가서도 주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다. 주변의 시선에 오히려 여자친구가 더 불안해한다. 커피에 설탕을 넣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의자도 빼준다. 실제 인터뷰 중간에 볼펜을 떨어뜨렸는데 그는 하던 말을 멈추고, 한참을 굴러간 볼펜을 주워와 건네주는 세심함을 보였다.
“우성이 형이요? 일을 끝내고 나면 스태프 한명 한명에게 일일이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요. 자신을 대우해준 사람에게는 반드시 똑같은 대우를 해주려고 하죠. 촬영이 지연되면 본인은 굶어도 매니저나 코디네이터의 식사를 챙겨주고, 말수는 적지만 가식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만 하니까 인간적으로 믿음이 가는 스타일이죠.”
그의 매니저 정지철씨의 얘기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더니 그의 모습을 보고 카페 안이 술렁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 힐끔거리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그의 앞을 자신 있게 지나가다 마지막에 머리를 넘기면서 쳐다보는 여자도 있었다.

공부를 따로 해야만 세상을 아는 건 아니잖아요?


배우가 되고 싶어 모델 센터에 응모한 그는 1994년 영화 ‘구미호’의 오디션에 합격해 배우가 되었다. 그 후 2편의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줄곧 영화만 했다. 영화배우라는 단어가 너무 좋기 때문에 다른 건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영화배우는 뭐랄까 몽환적인 그것, 꿈 같아요. 보이는데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구름 같기도 하구요. 잘생긴 사람을 보고 영화배우같이 생겼다는 말을 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을 가리켜 ‘영화 같은 삶을 산다’는 말을 하니 얼마나 좋은 단어예요. 영화배우라고 하면 폼도 나고요.”
영화배우가 되고 나서 배우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산다. 스스로 바른 몸가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버겁기도 하지만 사람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 행복하다.
영화 제작이 재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되었던 적은 ‘비트’를 찍으면서. 연기한 ‘민이’라는 인물의 내레이션도 쓰고, 촬영 내내 김성수 감독과 시나리오를 분석하며 작업했다.
그 이후 영화 촬영 틈틈이 ‘이 장면에서 이런 대사나 상황도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놓치지 않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디어로 적어놓은 메모장만 수십 권이고, 완성된 시놉시스도 상당수다.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다. ‘서른 살 되기 전에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고 인터뷰한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걸 안 하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셈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다. 그는 이미 광복군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감독 데뷔 작품으로 정해놓았다.
“격변하는 시대가 주는 인간의 감정을 로맨틱하게 그려내고 싶어요. 제 영화의 테마는 사랑이거든요.”

30에 감독돼 만들 영화의 테마는 사랑이에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무사를 찍다가 무릎을 다쳤어요. 그때 다른 연기자 촬영하는 것을 보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축구 선수의 심정을 알았죠. 다친 무릎이 나았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공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별 소원이 없는데요”라고 말한다.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무사’ 촬영을 하면서 불거져 나왔던 중국 배우 장쯔이와의 염문설에 대해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물어보아도 그는 “그냥 좋은 배우예요”라고 간단하게 말할 것 같았고, 사랑해서 8년간이나 만나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한 그에게 차마 던질 수 없는 우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말처럼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나는 배우 정우성도 좋아하게 되었다. ‘지킬 것은 지킬 줄 아는, 상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