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예정지 임차농들, 땅 반환 요구에 '발 동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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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행정도시 예정지 농지 주인들이 임대를 거부하는 바람에 경작지가 줄어들게 된 연기군 남면 농민 황윤석씨가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공주시 장기면 당암리에서 논 2000평을 빌려 몇년째 벼농사를 지어 온 양모(54)씨는 최근 땅주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외지에 사는 땅 주인이 최근 갑자기 나타나 "올해부터 직접 농사를 지을 테니 땅을 내 놓으라"고 통보해 온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임모(66)씨도 최근 땅 주인이 지난 10여년간 자신에게 빌려줬던 논(400여평)에 사전통보도 없이 배나무 수백그루를 심는 바람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며칠째 밤잠도 설치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연기.공주지역에서 외지인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들이 실업자로 내 몰리고 있다.

정부가 최근 행정수도 예정지 및 주변지역을 확정, 11월부터 토지보상에 나서기로 하자 외지 땅 주인들이 영농 보상비를 챙기기 위해 임차농에게 "직접 농사를 지을테니 땅을 내놓으라"고 통보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토지보상법에 따르면 수용되는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는 2년치 농산물 매출액을 '영농 보상금'으로 주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땅 주인이 해당지역에 거주하지 않을 경우 영농보상금 전액이 실제 경작자에서 지급된다. 땅주인이 해당지역에 거주하면 땅주인과 경작자가 협의한 내용에 따르고, 협의가 되지 않으면 땅주인과 경작자에게 50%씩 보상된다.

최근 행정도시 예정지로 지정된 연기.공주지역의 경우 전체 농지의 55% 가량이 임대농지다. 주민 상당수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통과 및 공포 이후 양씨와 김씨처럼 빌린 땅을 땅주인에게 내줬다.

논농사를 짓는 황윤석(남면 진의리)씨는 지주들이 땅은 내놓지 않는 바람에 영농규모가 지난해 1만여평에서 올해는 7000여평으로 줄었다.

아직 땅을 내주지 않은 임차농들도 땅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민 전모(55.장기면)씨는 "땅주인과 맺은 임대계약이 허술하다 보니 임차농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땅을 돌려줘야 하는 실정"이라며 "그동안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온 농민들에게도 일정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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