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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재」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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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수년래 우리사회에서는 사회불안과 정치불안이 격화되어 위기에 이르게 되면「정치가 부재하게 된다」는 기이한 경향이 조성되고 있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전적으로 말살하고 강행되었던 군사정권의 절대주의적인 통치가 민주정치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지만, 이른바「민정이양」후에 있어서도 작년의 6·3사태나 금년의 8·25사태처럼 상이하는 사회집단사이의 대립충돌이 날카로와 져 정치적 조정이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필요하게 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정치가 부재하는 상황이 조성된다는 것은, 대의민주정치의 현재 및 장래를 위해 국민적 입장에서 깊이 반성해 보지 않으면 안될 문제인 것이다.
「데모」학생과「데모」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됐던 무장군인 사이에 불행하게도 격돌이 벌어졌던 지난 8·25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여당도 야당도 국회도 모두 정치권외로 굴러 떨어졌다. 정치하는 사회집단인 정당과, 대의정치의 중추기관인 국회가 정치권외로 전락하였다는 것은 정히 정치부재상황이 성립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현재 정당과 국회는 서서히 정치권내로의 복귀를 모색하고 있는 중에 있지만 앞으로도 자주 이런 상황이 성립된다고 하면, 우리는 헌정유지에 자신을 잃게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정치부재 상황이 성립된 기본원인이 무엇이며 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를 한번 정확히 검토해 둘 필요가 있는데, 우리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정치하는 사람들의 집단인 정당이 대중과 유리되어 있고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얻기는 커녕, 대중의 불신과 멸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건국후 근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국민은 정권의 합헌적·평화적 교체를 한번도 경험치 못했고 비합헌적·폭력적 교체만을 되풀이 경험해 왔다. 이런 변칙적인 정권교체는 반드시 정치적 보복과 사회적 혼란을 자아내게 마련인데 가흑한 보복과 격심한 혼란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서 국민중 현명하고 신중한자는 정당에 참여하여 정권투쟁의 일선에 나서는 것을 어리석고 위험한 모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당기피증이 대중사회에 은연히 조성되어 가고 있는 데다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무소속입후보 금지의 헌법조항에 근거를 둔 정당법은 국민의 정치참여의 폭을 크게 줄여 놓았으며 정당의 저변이 대중사회에 밀착할 수 있는 조건을 약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리하여 정당이란 그 어느 것을 불문하고 국민중「보다좋은 부분」의 아니라「보다 나쁜 부분」의 집결체로 타락하게 되었는데 극도로 혹평한다고 하면 여당이란 건달들의 모임터요, 야당이란 실업자의 소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고 말았다. 정권투쟁을 한다고 모여든 사람들이 민중의 신선한「아이디어」를 흡수하여 좋은 정책을 만들어 가지고 이를 귄력적 집행에 옮겨볼 생각은 하지 않고 여당은 주로 권력분배 때문에 그리고 야당은 주로 당내 영도권 다툼 때문에 추잡한 내분에 영일이 없음으로 해서 국민은 정치한다는 사람들을 보기를 적어도「모럴」면에 있어서는 자기의 수준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병폐의 근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적인 면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정당법을 폐기하여 국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넓게 열어 놓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정당은 종래의 추잡한 내분을 신속히 종식시킴으로써 국민의 불신과 멸시와 증오를 불식할 수 있도록 고도의 자각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또한 국민중「엘리트」층에 속하는 인사들은 정당 밖에서 정당의 더러움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정당에 들어가든지, 혹은 정당을 만들어 가지고 정당정화에 앞장서는 것이 요청된다.
둘쨋번의 기본원인은 국회의원과 국회의 부패·무능이다. 사적으로 보아 우리사회에서 정치부패가 먼저 비롯된 것은 국회이지 결코 행정부가 아니었다.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감시·편달하는 국회부터 썩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은 행정부도 사법부도 썩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대다수는 청렴하고 지조있는 생활로써 민의를 충실히 국가에 반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종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민중위에 군림하고 국회의원자리를 악용하여, 임기중에 돈이나 벌 생각으로 이권쟁탈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국리민복이란 안중에 없는 것이오, 그저 남아 있는 것은 귄세에 대한 강한 집착과 일신의 영달과 황금에 대한 무한한 사랑뿐이다.
정치자금조달을 빙자하여 업자를 찾아 다니면서 혹은 구걸하고, 혹은 협박하며 이권획득을 위해서는 더러운 중상모략도 불사하고 악랄한 권모술수를 다하고 다니는 것이 많은 국회의원의 속임 없는 생태이다.
이런 의원들이 모인 국회가 조정하고 지혜롭게 의사를 다루어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니 지각있는 국민이 국회의원과 국회를 불신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국민이 국회를 보기를 자기네들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보지 않을 적에 그 국회는 벌써 국회가 아닌 것이오, 그 대의정치는 형해만이 남아 있는「명목상의 대의정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생태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는가. 현 국회를 곧 해산하기는 어려운 사정이라고 한다면, 우선은 국회의 엄중한 자가숙정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부패했으니, 누구도 상대방을 고발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겠으되 그래도 덜 부패한 자는 더 많이 부패한 자를 고발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국회의 부패 무능은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의식이 높아져서 우수한 인간을 국회에 보내는 외에 근본적으로 딴 길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제도적인 면에서는 정치자금을 완전히 양성화하고 국회의원이 이권과 결탁할 수 있는 제반「루트」로부터 차단돼야 한다.
세쨋번의 기본원인은 학생과 군대의 정치적 압력이다. 60년 4·19와 61년 5·16을 계기로 하여 학생과 군이 우리사회에 있어서 최대의 정치적인 압력단체로 둔갑했다는 것은 누구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학생과 군대가 가두에 뛰쳐나와 대의민주정치에 대하여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데서 부터, 또 그 압력의 효과가 거의 절대적이었다는 데서부터 우리나라 정치의 비극적 현실은 조성된 것이었다. 지난번 공권의「데모」학생과 무장한 군인들이 같은 젊은 세대에 속하면서 격돌을 벌이는 것을 보고 뜻 있는 애국시민이라면 누구도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한없는 우려를 금치 못하였을 것이다. 만약에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되풀이 된다면 결국 대한민국은 와해되고 말 우려조차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태는 요컨대 정치지도자들이 못났기 때문이오, 정치지도자들이 학생이나 군의 실력을 정치도구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성인에 달한 학생과 군인자신들에게도 책임의 일반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학생이 모두 학원에 돌아가고, 또 군이 엄중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 양자가 각기 맡은바 사회적 사명을 다함으로써 만 종식될 수 있다. 정부지도자들은「데모」 학생의 불평불만의 씨를 성실히 제거하여 그들이 다시 가두에 뛰쳐 나오는 일이 없도록 선도의 노력을 다하는 동시에 사태가 악화되면 군사력을 발동하여 시민을 위압하는 악습을 깨끗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학생이나 군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다가 자기 스스로가 정치권 외로 밀려 나오는 과오를 절대로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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