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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말한다|서울대 문리대 교수 이용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용희 교수는 회견에서 핵심을 두드리기는 했으나 거열하지는 않았다. 현실이 각박한 때문일까? 이교수 자신도『나는 한국내에 살고 있거든…』하고 한번 소리 없이 웃는다.
우선 이교수는 정치의 상실을 엄격히 선언했다. 『의회제도가 바로 헌정인 것은 아니지. 의회제도는 국회 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토의되고 다듬어지는데 의의가 사는 것인데 요즘은 그렇질 않거든….』
의회와 정치와 현실이 제각기 헛돌고 있는 것이니 이교수는 의회제도가 『한갓「윈도·드레싱」(진열장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슴잖고 진단을 내렸다.
그는 어느 외국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유주의적인 양당 정치하에서는 양당의 차이란 5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양당제도는 「픽션]』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원리적인 데로 미친다. 정치가 원활할 때는 통상 명분이 50%, 강제력 50%로 작용한다면서 명분만 내세우면「형식주의」로 치우치고 명분이 줄어들면「힘의 지배」만이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
『요즘 인상 같아서는 힘의 지배지, 정치는 상실되어 버렸어. 도처에 행정주의 적인 것만 있어…. 이건 정치의 하층이야』이렇게 정치상실을 고한 이교수는 우리의 위치를 먼데서 내다보기 시작했다.
『외교도 없어진지 오래요. 이젠 외교란 이름으로 국내효과를 노리는 것 뿐이지. 외교에서 자유재량이란 것이 없어져 버렸어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봐…. 역사를 보면 우리의 남녘과 북녘에 대한 국제적 이해도 모두 달랐지요. 누구는 북쪽이 완충지대로서 필요하다 하고 누구는 남쪽이 필요하다 했거든.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면 한반도를 정치나 경제에서 떠나 먼저 전략면에서만 다루려고 해왔지. 소련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고, 종전 후 미국이 일본본토와 남양열도를 처리 할 때의 생각이 그랬지. 한국은 그런 위치에 있어요』이교수의 말은 계속된다.
『과거의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결국은 한국전체를 가능한 완충지대화 하느냐 아니면 열국의 세력균형을 유지케 하여 지탱하는냐 하는데에 만 쏠렸다』고 말하면서 지금도 똑같은 상황에 있다고 보았다.
현재 상황에 대한 구제책을 이 교수는 이렇게 처방한다.
『국내정치의 총력이 역사적 방향감각과 일치 할 때 비로소 정치는 중량을 찾는다』고 얘기하면서 지금은 꼭 『남의 대들보 밑에 천막을 치고 그 속에서 밥풀 싸움을 하는 격』이라고 해부했다.
역사의식 없는 정치- 그 한가지로 「측근정치」의 생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측근정치는 역사와 더불어 전통이 오래지. 그러나 결코 근대적이지는 않아.「측근」이 정책적 재능이 있을 때는 그것이「정치」로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사적인 요소로 타락하고 말아요.』
이런 전제를 내세우고 이 교수는 정치인이 전체국민의 「평균치」로 자신을 환원시켜 공직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의 세비를 국제수준으로 정하려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공직자의 생활을 이「평균치」로 돌려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말한다.「셔먼·아담스」가「아이젠하워」대통령을 보좌하다가「호텔」비 50여불을 친구로 하여금 물게한 것 때문에 공직을 떠나야 했던 얘기를 거열 하면서-.
서재의 한쪽 귀통이에 놓인 백자기 속의 석류가 강한 신맛을 풍긴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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