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사퇴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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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야권 후보 단일화는 의외의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23일 사퇴를 전격 선언하면서다. 그의 사퇴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에도 조건이 없었다. 우리 정치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경우다.

 정치권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우선 안 후보 개인의 성정(性情)이 결단의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다. 실리보다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그의 성격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정치적 흥정을 중단케 하는 배경이 됐다는 거다. 양보의사를 보이지 않는 문 후보와 정면충돌함으로써 스스로 쌓아 온 새 정치 이미지에 자꾸 흠집을 낼 바에는 명분 있게 퇴장하는 길을 택했다는 거다. 그가 지지율 하락을 걱정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더티 플레이’를 문제 삼아 단일화 협상을 잠정 중단키로 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문 후보와 11·6 회동 이후 “단일화를 추진하면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만 보고 가겠다”고 약속했던 터였다. 새 정치와 혁신을 주장해 온 그가 자신의 약속을 거스르면서까지 단일후보에 집착하기엔 명분이 약하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수 있다. 이날 사퇴 회견에서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치적 손절매’라는 박한 평가도 나온다.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 중단 이후 지지율에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새누리당 박근혜·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포함한 다자구도에서 3위로 내려앉기도 했다. 단일화 룰 협상에서 막판 ‘박 후보와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요구했던 것도 지지율 하락에 따른 불가피한 승부수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협상 초반만 해도 민주당의 조직력이 반영되는 모바일경선을 뺀 모든 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했던 게 사실 아니냐”며 “하지만 지지율 하락과 함께 지지도 조사, 또 양자대결 조사로 조금씩 요구사항이 변했다”고 말했다. 정면승부를 통한 패배보다 명분 있는 후퇴가 정치적 장래를 위해 나은 카드라고 봤을 거라는 해석이다.

 그는 또 사퇴 명분을 ‘새 정치 실현의 실패’로 들면서 단박에 박·문 후보 모두를 ‘옛 정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버렸다.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안 후보는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중도·무당파를 규합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남을 여지를 만든 셈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를 피할 수 있게 해 줬다는 동정표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이후 ‘국민연대’의 틀로 민주당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도 이런 분석을 가능케 해 준다. 안 후보는 “평생을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한 만큼 대선 이후 신당 창당 등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설 공산이 크다.

 관심은 안 후보가 과연 대선국면에서 문 후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울지 여부다. 안 후보는 사퇴 선언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백의종군’이란 표현은 향후 문 후보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전혀 모른 척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기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과 문 후보 측의 ‘더티 플레이’에 크게 실망했던 만큼 성의를 다해 돕기는 어려울 거란 얘기다.

 안 후보 지지층도 마찬가지다. 안 후보가 사실상 정치권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에 내몰려 사퇴한 만큼 문 후보에 대해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할 거란 관측에서다. 캠프 내에선 민주당 측의 압박에 대해 격앙된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안 후보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를 포기할 공산이 크다. 남은 기간 동안 이들을 달랠 수 있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문 후보에게 달렸다”고 했다.

양원보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연합/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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