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워치] 소비재·문화·서비스 종목이 기대주로 주목받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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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만
NH-CA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5년 전 즈음, 일본에 있는 계열 자산운용사를 방문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기가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국내 시장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구조와 부실의 규모조차 알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정치 지도부가 자주 바뀌면서 리더십도 없었다. 마이너스 성장의 암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만난 한 일본인은 당시 막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 한국과 한국인을 부러워하는 말을 건넬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정계와 경제계에 변화가 생기는 듯하다. 유력 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일본 중앙은행(BOJ)의 윤전기를 돌려 엔화를 무제한으로 공급해 3%의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 수년간 엔화 강세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리콜 사태까지 겹치면서 위기를 맞은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가 고전하는 것도 엔화 강세와 무관하지 않다. 정보기술(IT) 부문에서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인 샤프의 주가는 지난 5년간 90% 넘게 하락했다. 도시바·파나소닉 등은 물론이고, 일본 IT의 상징과도 같은 소니까지 존폐 위기에 몰렸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낮췄다. 물론 일본 기업이 경영의 활력을 잃고 투자 기회를 잇따라 놓친 것이 패착이다. 그러나 분명, 엔화 강세도 지금의 일본 기업을 고전하게 한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말 달러당 70엔 선을 위협하던 엔화는 약세로 돌아서 최근엔 82.6엔까지 환율이 올랐다. 같은 기간 원화는 10% 정도 강세를 보이며, 달러당 1086원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지난 5년간 진행된 엔화 강세와 원화 약세를 감안하면, 아직 원화는 강해지고 엔화는 약해질 여지가 많아 보인다.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자동차·IT 업종은 경쟁 국가나 기업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세계 5위권의 매출액과 1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우량 자동차 기업이 되었다.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IT 기업도 일본이나 대만 기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선전했다. 투자자는 이러한 경쟁력이, 악화된 세계 거시경제 환경에서도 잘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분기 동안 주식시장을 이끌었던 한류를 바탕으로 한 소비재·서비스 산업의 성장도 지켜봐야 한다. 일본을 넘어선 외국인 관광객 수,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지는 한류 문화 콘텐트 산업이나 화장품·음식료 등 문화와 연결된 소비재 기업의 선전도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최근 주식시장은 화학·철강·조선·기계 등 전통의 경기 관련 산업보다는 IT·자동차·문화·소비재 등 산업에 기대하는 듯하다. 주식시장을 단기적으로 보면 ‘쏠림 현상’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불안한 모습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의 모습을 잘 찾아내 반영하는 것 같다.

양해만 NH-CA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 (C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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