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바흐 자녀 20명 … 3명은 대이어 음악사 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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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년 18세가 된 바흐는 고향인 튀링겐 지방에 새로 생긴 아른슈타트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일했다. 그는 여기서 반주와 오르간 정비는 물론 예배음악 작곡과 합창단 지도까지 맡았다. 수준 높은 음악을 도입하려고 강훈련을 시키는 바흐가 합창단에 속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미웠을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연주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합창단 학생들로부터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아른슈타트 교회를 떠나는 결정적 계기는 여성인 ‘마리아 바르바라’를 성가대 석상에 앉혀 노래하게 한 사건이다. 그 당시 교회 성가대에는 여성의 입장이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발적으로 성가대 석에 앉혔던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바흐의 부인이 되는 그의 사촌 누나였다.

“스물 다섯 되는 자식 다른 사람 자식 낳듯 한 배에 하나 낳아 삼사 세 된 연후에 낳고 낳고 했어야 사십이 못다 되어 그리 많이 낳겄느냐.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두셋씩 대고 낳아 놓았구나.” 흥부전에 나오는 흥부의 자식타령으로 흥부의 자식은 무려 스물 다섯이었다.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 소생 적자가 8남, 적녀인 공주가 2녀, 후궁의 서자가 10남, 서녀인 옹주가 2녀.” 해서 합이 스물 둘, 이는 다름 아닌 세종대왕의 자식들로 언급된 것만 스물 둘이다. 흥부는 한 아내에 스물 다섯이요 세종대왕은 여섯 아내로부터 스물 둘이니 자식 많이 낳기로는 흥부가 단연 앞선다.

바흐에게도 스무 명의 결코 적지 않은 자녀가 있었는데 첫 아내였던 사촌누나 바르바라와의 사이에서 13년간 7명, 그녀가 죽고 난 이듬해 두 번째로 얻은 아내 안나 막달레나로부터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니 아내 1인당 자식 수로는 세종대왕보다 단연 앞선다.

흥부의 자식 스물 다섯이 나중에 자라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종대왕의 경우는 1남과 2남이 각각 문종과 세조로 왕위에 올랐지만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군’ 아니면 ‘공주’ ‘옹주’로 생을 마감했다.

바흐의 자식들은 어떠한가.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 차남인 카를 필립 에마누엘, 막내인 요한 크리스티안 등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차남 에마누엘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로 막내인 크리스티안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면서 그들의 아버지이자 음악의 아버지인 대 바흐와 헨델을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 음악에서 하이든·모차르트의 빈 고전파로 음악사를 크게 전환시켰으니 무릇 자식은 숫자만으로 자랑할 일은 아니다.

바흐가 65년간 남긴 곡은 무려 1000여 곡이 넘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의미는 바흐의 후손들에게는 남다르다 하겠다.

김근식 고전음악감상실 더클래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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