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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택시표 얻기 위해 1500만 시민 희생시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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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선 때 택시 표를 의식해 너무 과속으로 밀어붙였다.”

 택시에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법적 지위를 주는 대중교통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이 2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직후 새누리당 이명수(재선·아산) 의원이 본지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여야 의원 5명(새누리당 이병석·이명수·최봉홍, 민주통합당 박기춘·노웅래) 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은 이어 “이렇게 서두를 게 아니라 반발하는 버스업계, 정부와 충분히 시행 시기와 재정 지원 대책을 충분히 협의한 뒤 처리하는 게 옳았다”고 덧붙였다. 뒤늦은 후회인 셈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개정안 통과는 표 계산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의 택시업계 종사자는 개인택시 16만 명을 포함해 30만 명이다. 이에 비해 22일 총파업을 예고한 버스업계 종사자 수는 10만 명이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로 따지면 시내버스만 1500만 명으로 압도적이지만, 개정안은 이용자와는 관계가 없다.

 또 현행 대중교통인 버스에 대한 국고유류보조금과 지방비 등 지원 규모(2011년 기준 1조3380억원), 그리고 택시에 대한 유류보조금과 세제 혜택(7615억원) 등의 차이에 따른 재원 싸움의 의미도 있다.

 추가 재정이 들어가는 개정안이기에 정부는 지난 15일 국토해양위의 법안 처리에 이어 이날 법사위에서도 “택시는 대중교통으로 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법사위 회의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택시는 다중을 실어나르며 일정한 노선과 운행 시간표가 정해진 대중교통이 아니라 개별 교통수단”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나 학문적으로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한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택시업무는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업무이기 때문에 법 통과 때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이 가중해지고, 택시-버스업계 간 갈등도 심화돼 국민적인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여야 법사위원들은 해당 상임위인 국토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표결을 밀어붙였다.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법체계나 헌법 위반 사항이 아닌 경우 상임위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법사위의 전통”이라 고 말했다. 이어 위원장석에서 사회를 보던 민주통합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이 별도로 법안소위에 회부하지 않고 곧바로 표결을 진행해 만장일치 가결을 선포했다.

 그러자 김황식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22일 본회의 상정 보류를 부탁한 상태다. 정부 일각에서는 국회가 ‘대선 택시표’를 의식해 여야가 본회의 처리를 강행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4선·포항북)은 “그동안 버스가 정부 지원으로 발전해온 만큼 이제는 택시업계도 생존권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의원(3선·남양주 을)은 “택시에 대한 대중교통 차원의 지원은 여야 총선 공약일 뿐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의 공약”이라며 “개정안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 근거만 마련해뒀는데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방안은 마련하지 않고 버스업계 반발을 조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발의자인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내가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토해양위 표결 때도 일본 출장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며 “ 민주당이 당론이라며 과속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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