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옻공예 키운 일사, 18년 만에 모십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일사 김봉룡 선생은 돌아가기 전까지 개인공방인 원주시 태장동 원주칠공예소에서 작업을 하고 제자를 길렀다. 사진은 선생이 자개를 붙이는 모습. [중앙포토]

예부터 내구성이 필요한 물건에는 옻칠을 했다. 원주에는 옻나무가 많다. 260㏊의 면적에 55만 그루의 옻나무가 있다. 일본에서도 알아줄 만큼 옻의 품질도 우수하다. 이 때문인지 원주에는 옻을 사용하는 공예가가 많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66)씨를 비롯해 칠화칠기 양유전(62)씨 등이다. 원주옻문화센터가 운영되는 등 원주는 ‘옻칠 공예도시’라 할 만하다. 이렇게 된 데는 이형만씨의 스승으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에 선정된 일사 김봉룡(1902~1994) 선생이 1968년 원주칠공예주식회사의 공예부장으로 초빙돼 원주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한국 공예사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세웠다. 나전칠기 줄음질 기법을 혁신하고 칠화(漆畵)를 복원했으며 칠 공예품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업적 대부분이 원주에서 이루어졌다.

 김봉룡 선생이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도안과 도구 등 그의 손때가 묻은 유품 2180점이 원주시로 돌아왔다. 유품은 김 선생의 큰아들 옥환(75)씨 등 가족이 소장하고 있었다. 원주시는 지난해 11월부터 김 선생의 작품과 유품 수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유품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선생의 나전칠기 작품 ‘공작서류함’과 ‘당초무늬 화병’. [사진 원주역사박물관]

 이후 지난 8월까지 접수한 유품은 나전의 무늬를 디자인하는 나전도안, 나전을 새길 기틀을 만드는 설계도 격인 백골도안을 비롯해 원료인 조개, 조개를 가공한 자개, 안료, 옻칠 등 나전칠기 제작 과정에 필요한 것이 망라돼 있다. 이 유품을 통해 나전칠기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김 선생이 사용한 나전칠기 줄음질 기법도 살필 수 있다. 줄음질 기법은 실톱으로 조개 껍질을 문양대로 오려 내 작업하는 기법이다.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끊어서 문양대로 연결하는 끊음질 기법과 다르다. 유품에는 또 1925년 프랑스 파리 세계장식공예품박람회에 출품해 받은 은상 상장 등 개인 소품도 포함돼 있다. 나전장 이형만씨는 “나전칠기는 제작과정이나 도구·재료·설계도안 등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반 시민은 완성품만 볼 수 있었다”며 “선생님의 유품은 나전칠기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20일 ‘일사 김봉룡 특별전’을 열어 김 선생의 작품 19점과 기증을 받아 정리한 유품을 공개했다. 이날 특별전 개막식에서는 유품기증식도 함께 열렸다. 특별전에 선보인 작품은 공작서류함, 용무늬8각 과반, 당초무늬 화병 등 김 선생 특유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특별전은 12월 16일까지 열린다. 원주역사박물관은 특별전이 끝나면 전시공간을 개편, ‘일사 김봉룡실’을 꾸며 작품과 유품을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박창식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특별전을 계기로 옻칠 공예도시 원주가 더욱 성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