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내구성이 필요한 물건에는 옻칠을 했다. 원주에는 옻나무가 많다. 260㏊의 면적에 55만 그루의 옻나무가 있다. 일본에서도 알아줄 만큼 옻의 품질도 우수하다. 이 때문인지 원주에는 옻을 사용하는 공예가가 많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66)씨를 비롯해 칠화칠기 양유전(62)씨 등이다. 원주옻문화센터가 운영되는 등 원주는 ‘옻칠 공예도시’라 할 만하다. 이렇게 된 데는 이형만씨의 스승으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에 선정된 일사 김봉룡(1902~1994) 선생이 1968년 원주칠공예주식회사의 공예부장으로 초빙돼 원주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한국 공예사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세웠다. 나전칠기 줄음질 기법을 혁신하고 칠화(漆畵)를 복원했으며 칠 공예품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업적 대부분이 원주에서 이루어졌다.
김봉룡 선생이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사용했던 도안과 도구 등 그의 손때가 묻은 유품 2180점이 원주시로 돌아왔다. 유품은 김 선생의 큰아들 옥환(75)씨 등 가족이 소장하고 있었다. 원주시는 지난해 11월부터 김 선생의 작품과 유품 수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족으로부터 유품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이후 지난 8월까지 접수한 유품은 나전의 무늬를 디자인하는 나전도안, 나전을 새길 기틀을 만드는 설계도 격인 백골도안을 비롯해 원료인 조개, 조개를 가공한 자개, 안료, 옻칠 등 나전칠기 제작 과정에 필요한 것이 망라돼 있다. 이 유품을 통해 나전칠기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김 선생이 사용한 나전칠기 줄음질 기법도 살필 수 있다. 줄음질 기법은 실톱으로 조개 껍질을 문양대로 오려 내 작업하는 기법이다.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자른 후 이를 끊어서 문양대로 연결하는 끊음질 기법과 다르다. 유품에는 또 1925년 프랑스 파리 세계장식공예품박람회에 출품해 받은 은상 상장 등 개인 소품도 포함돼 있다. 나전장 이형만씨는 “나전칠기는 제작과정이나 도구·재료·설계도안 등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반 시민은 완성품만 볼 수 있었다”며 “선생님의 유품은 나전칠기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20일 ‘일사 김봉룡 특별전’을 열어 김 선생의 작품 19점과 기증을 받아 정리한 유품을 공개했다. 이날 특별전 개막식에서는 유품기증식도 함께 열렸다. 특별전에 선보인 작품은 공작서류함, 용무늬8각 과반, 당초무늬 화병 등 김 선생 특유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특별전은 12월 16일까지 열린다. 원주역사박물관은 특별전이 끝나면 전시공간을 개편, ‘일사 김봉룡실’을 꾸며 작품과 유품을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박창식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특별전을 계기로 옻칠 공예도시 원주가 더욱 성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