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시장 인파 몰리는데 낙찰가율 왜 낮은가 봤더니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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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지난 17일 서울동부지법 경매 6.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캐슬골드 166㎡형이 경매에 나왔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연결되는 감정가 19억원짜리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데요. 무려 12명이 입찰했습니다.

이 정도 사람이 몰리면 낙찰가가 꽤 상승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결과가 좀 의외입니다. 116777만원의 입찰가를 쓴 김모씨가 주인이 됐는데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61.5%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도 다들 입찰가를 낮게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경매시장에 사람들은 몰리는데 낙찰가율은 지지부진한 현상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경매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경매시장에 몰린 입찰자는 1622명으로 월간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올 초 월별로 900명 정도 입찰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이라네요.

그런데 낙찰가율은 별 변동이 없습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말 서울지역 아파트 낙찰가율은 74%에 불과합니다. 최근 계속 7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매업계에서 부동산 물건의 낙찰가율이 80% 미만이면 ‘시장 침체’ 상황으로 봅니다. 응찰자들이 감정가와 비교해 평균 30% 정도 낮게 입찰하고 있는 겁니다.

응찰자가 몰리면 낙찰가율은 올라가기 마련인데 요즘은 영 아니라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몰릴 것 같으면 응찰자는 낙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입찰가를 높이는 경향이 나타나는 데 요즘은 통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네요.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동작구 흑석동 명수대현대 147㎡형 경매가 대표적인데, 13명이나 몰렸지만 낙찰가율은 65%에 머물렀습니다. 대부분 감정가의 절반 가격에 응찰한 셈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요즘 경매시장에 주류는 실수요자여서랍니다. 나중에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라면 ‘베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경매시장에 주류는 시세보다 싸게 내집 마련을 하겠다는 실수요자라고 합니다. 무리한 입찰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현재 가치를 판단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입찰가를 정하는 겁니다.

지금은 수요자 중심 시장, “최대한 고르고 골라라”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경매본부장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요즘 경매시장에 투자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실수요자에요. 아니면 실수요자의 의뢰를 받은 경매 전문가들이거나. 아이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도 자주 눈에 띱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대상 물건에 대한 현장조사를 꽤 자세히 하고 왔습니다. 시세보다 절대 비싸게 입찰가를 써내진 않죠. 싸게 사려는 목적에만 충실하죠.

매매시장에서 급매물이 봇물을 이루는 것도 낙찰가율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입니다. 감정가는 경매시장에 나오기 보통 5~6개월 전에 감정평가회사에서 평가한 가격입니다.

그런데 요즘 매매시장은 변화가 하도 심해 한달 사이에 수억원씩 싼 급매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매매시장에 감정가보다 수억원씩 싼 급매물이 어느 새 생겼는데 급매물 시세를 기준으로 입찰가를 결정하다 보니 낙찰가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달 27일 서울서부지원에서 경매 처분되는 용산구 한강로3가 용산시티파크1단지 146㎡형의 감정가는 165000만원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엔 138000만원에도 급매물이 나와 있습니다.

이런 점을 알고 나면 응찰자는 절대 입찰가를 높게 쓸 수 없는 겁니다. 당연히 낙찰가율은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취득세 감면 혜택은 경매시장에서 실수요자들을 늘린 결정적 동기가 됐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이 혜택은 올 12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합니다. 취득세 감면 받자고 애초에 집살 마음이 없던 사람이 마음을 돌리는 경우야 거의 없겠지만 애초에 내 집 마련 계획이 있던 사람들이라면 기왕이면 좀 앞당겨 세금 혜택을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경매를 기웃거린다는 겁니다.

EH경매연구소 강은현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취득세 감면 혜택은 잔금 납부일이 기준입니다. 낙찰을 받고 나면 1주일은 허가 절차, 1주일은 항고 기간입니다. 최소 2주일은 지나야 낙찰자가 잔금을 납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무리 늦어도 12월 중순까지 낙찰된 물건만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10월부터 좀 싸게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들이 경매시장에서 적극적으로 물건을 찾고 있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요즘 경매시장에 응찰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고가낙찰’이라고 합니다. 매매시장이 하도 빠르게 급변하고 있어 감정가보다 싸게 샀다고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몰린다고 이 물건이 인기를 끌겠다고 괜히 기대할 필요도 없구요. 무조건 시중의 급매물보다 싸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경매시장에 임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매물은 넘쳐나고 사려는 사람은 적은 수요자 중심 시장입니다.

경매는 명도비용, 기존 세입자로 인한 입주지연 비용 등 매매보다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입찰가를 쓸 때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경매시장을 최대한 활용해 저렴하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하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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