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정주영이 발탁한 트럭운전 청년의 현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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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150만원으로 트럭운송업을 시작해 매출 1조원의 기업을 일군 박주봉 대주·KC그룹 회장. 창밖 뒤편으로 보이는 IFC몰 건물의 철골 구조를 바로 그의 회사가 만들었다. [신인섭 기자]

서울 마포의 사무실 창 너머로 여의도 IFC몰을 바라볼 때마다 50대 중반인 그의 가슴속에 도전의식이 솟아오른다고 했다.

 23년 전 손에 150만원을 쥐고 시작해 연매출 1조원이 넘는 회사를 키운 대주·KC그룹 박주봉(55) 회장. 대주·KC 그룹은 지난 8월 완공된 IFC몰의 뼈대인 철골 구조를 지어 올린 기업이다.

이를 통해 ‘국내 가장 높은 건물의 뼈대를 만들었다’는 기록을 갖게 됐다. IFC몰 건물 세 동 가운데 가장 높은 55층짜리는 높이 284m로 여의도 63빌딩(264m)보다 키가 크다. IFC몰 말고도 상암 월드컵구장과 용산 민자역사,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 원형 돔 등이 모두 대주·KC그룹 작품이다.

 1970년대 후반 박 회장의 첫 직장은 부두에서 무연탄을 하역하는 회사였다. 서른둘 때 모은 돈 150만원을 가지고 운송업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저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량을 다섯 대로 늘렸다.

 건설 관련 분야로 발을 넓히게 된 계기는 90년대 초반 찾아왔다. 정부 대전청사를 지을 때였다. 현대건설에 건자재를 운반해주던 그는 운송 관리를 하려고 현장에 새벽에 출근해 오밤중까지 남았다. 어느 날 새벽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말을 건넸다.

 “매일 부지런하게 일하던데 누군가?”

 “운송업을 하는 박주봉이라고 합니다.”

 그게 삶을 바꿨다. 일감이 많아지더니 어느 날 정 명예회장이 “철골 구조 사업을 해보라”고 했다. 박 회장은 “이후는 탄탄대로였다”고 회고했다.

 대주·KC그룹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겼다. 하지만 중견기업으로서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가장 큰 게 인력난. 대주·KC그룹은 인천과 충남 당진, 전남 목포 등지에 사무실과 공장이 있다.

박 회장은 “요즘 청년들은 중견·중소 기업이나 지방 근무라고 하면 아예 쳐다도 안 본다”며 “혹 청년을 채용해도 90%는 6개월 내에 다 나가버린다”고 실상을 전했다.

목포 화학공장에서 박사급 인력을 구하는데 1년째 자리가 비어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젊을수록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일이나 직장을 찾아야 한다”며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고 편안한 곳만 찾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4년 전 인천 공장을 당진으로 옮기면서도 약간의 설움 같은 것을 겪었다고 했다.

 “대기업이라면 온갖 혜택을 주면서 모셔가려 했을 텐데 중견기업이라니 땅값마저 높게 부르더군요. 지역발전기금까지 내라고 했고요.”

 결국 공장을 옮기는 데 땅값 말고 다른 비용만 100억원 넘게 들었다는 게 박 회장의 말이다.

 2007년 베트남에 진출했고 최근엔 중동에 지사를 설립했다. 박 회장은 “국내에서 제일 높은 건물의 뼈대를 세웠듯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철골구조를 지어 올려 보이겠다”며 “우수 인재도 많이 키워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무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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