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만 기업 줄줄이 본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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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기업의 중국 본토행이 갈수록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러다간 대만도 언젠가는 중국 경제에 편입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대만 정부가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직접 돕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천수이볜(陳水扁)총통 직속 경제발전자문위원회는 5천만달러 이상의 중국 투자금지 규정 등 각종 규제들을 획기적으로 완화하라고 26일 정부에 제안했다. 陳총통은 이에 대해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이를 적극 수용할 것" 이라고 화답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 최대의 반도체회사인 TSMC의 모리스 창 회장은 이날 "중국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의 규제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4~5년 안에는 본토 투자를 하지 않겠다던 TSMC의 기존 방침을 뒤집은 것이다.

창 회장은 "세계의 경쟁업체들이 중국의 넓은 시장과 싼 임금, 세금감면 등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만 그냥 있다가는 경쟁력을 잃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TSMC와 같은 이유로 중국행에 나서는 대만 기업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침체에 빠진 대만 경제의 탈출구는 중국 시장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대만 기업 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 기업의 줄이은 본토행은 산업공동화(空洞化)와 실업률 증가 등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 어쩔 수 없는 선택, 본토행=그간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대만 기업 중 절반 가량은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1987년 양안(兩岸)간 민간협정이 체결된 이후 대만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한 돈은 약 6백억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현재 대만의 총 해외투자 1천5백억달러 중 약 40%가 중국에 집중된 것이다.

대만 기업의 중국 투자는 중국특구 개방초기 자본투자 위주에서 최근에는 대만 본사 공장을 본토로 옮겨가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광저우(廣州)시의 둥완(東莞)이 세계 컴퓨터부품의 70%를 생산하는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은 것은 최근 3년새 대만 기업들이 무더기로 이전해온 덕분이다.

세계 최대 컴퓨터 케이블 회사인 동취(東聚)전자 등 둥완의 1천3백여 부품업체 중 1천여곳이 대만 기업이다.

◇ 산업공동화 우려도=대만 기업의 무더기 중국행은 산업공동화로 이어져 자칫 대만 경제를 중국에 예속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대만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만 부화증권(復華證券)관계자는 "최근 대만의 경제불안이 되레 중국으로의 자본.인력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 며 "본토로의 공장 이전은 대만의 실업률을 높이고 자본.기술 유출은 대만 경제의 인프라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를 잘 알면서도 중국행을 계속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게 대만의 고민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 시장을 내팽개쳐 두기엔 최근 대만 경제사정이 너무 나빠졌기 때문이다. 대만의 지난 2분기 성장률은 76년 석유파동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2.35%)로 곤두박질했다.

이정재.홍수현 기자 jjy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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