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400km… 우르릉 쾅 "고막 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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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속도 영화는 종착역이 어디일까. '스피드' (1994년) , '식스티 세컨즈' (2000년) 의 질주는 시속만 놓고 볼 때 '드리븐' (25일 개봉) 에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감각은 분명 내성(耐性) 의 산물. '드리븐' 을 보고 나면 다음번에 어떤 영화가 우리를 초고속의 세계로 안내할지 궁금하다. 앞으론 로켓의 초음속을 스크린에 그려내야 할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드리븐' 은 그만큼 속도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영화다. 귀청을 때리는 굉음을 내뿜으며 시속 4백㎞로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에 눈과 귀를 맡기면 그만이다.

화면을 압도하는 자동차 경주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토록 휙휙 돌아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드리븐' 은 영어 동사 드라이브(Drive) 의 과거분사를 제목으로 내세울 만큼 관객을 영락없는 객체로 만든다. 관객이 눈을 부릅 뜨고 영화를 리드하는 주체가 아니라 스크린이 쏟아내는 현란한 영상에 그저 몸을 맡기면 'OK' 라는 뜻에서다.

부정적으로 판단하면 별로 생각할 게 없다는 작품이라는 말도 된다.

대신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의 혼을 앗아가는 연출력은 대단하다. 귀청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자동차들의 엔진 폭발음에서 시작해서 바로 그 천지를 울리는 굉음으로 끝나는 단순한 구성이 오히려 관객을 사로잡는다. 전자오락실의 자동차 게임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라면 별다른 불평없이 즐길 철저한 오락영화다.

당연히 줄거리는 단순하다. 영화의 특성상 레이서간의 갈등, 여자를 둘러싼 다툼, 선배.후배 레이서의 교류 등 드라마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자동차들의 숨가쁜 질주에 비하면 얘기할 거리가 많지 않다. 신인 레이서 지미(킵 파듀) 와 전년도 챔피언 보(틸 슈바이거) 의 정상을 향한 경쟁이 주요 모티브다.

경기 도중 슬럼프에 빠진 지미를 구원하는 수호천사격인 조의 역할을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이 해냈다. 제작.시나리오.연기 등 1인 3역을 맡은 스탤론의 노익장이 주목되지만 '록키' 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무엇은 찾기 어렵다.

영화의 무대는 F1과 함께 세계적인 카레이싱 대회로 꼽히는 CART. 전세계 도시를 돌며 20회의 시합을 치른다. 영화에서도 리우데자네이로.도쿄.토론토.디트로이트 등 각 도시의 풍경이 양념거리 삽입된다.

특히 토론토 도심에서 지미와 조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백미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바람에 가판대의 잡지가 날아가고, 지나가는 아가씨의 치마가 올라가고, 포도(鋪道) 의 맨홀 뚜껑이 벗겨진다.

'드리븐' 엔 '클리프 행어' '다이하드2' 등 시원한 액션영화를 연출했던 레니 할린 감독의 면모가 그대로 살아있다.

화면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첨단 카메라와 컴퓨터 그래픽을 십분 활용한 자동차 충돌.폭발.공중회전 장면 등이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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