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 감금·단종 … 소록도의 아픔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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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의 소록도병원이 ?소록도 100년사? 편찬과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일제 강점기 때 병원 규율을 어긴 한센인들을 가뒀던 감금실(왼쪽)과 남성 한센인들을 강제로 거세했던 단종대(오른쪽) 모습. 두 건물은 현재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67호와 제66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12일 오후 3시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국립병원 ‘100주년 기념사업 TF팀 사무실’. 직원 2명이 한센인과 관련된 각종 기록물을 분류하느라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소록도 100년사』 편찬과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 중인 소록도병원의 김재우(60) 사무관과 김병옥(55) 주무관이었다.

 김 사무관 등은 지난 7월 꾸려진 태스크포스(TF)팀에서 100년사 편찬을 위한 자료 수집에 열정을 쏟고 있다. 책 한 권에 소록도의 100년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전국 91개 한센인 정착촌을 돌며 옛 자료들을 수집한다. 다른 지역의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 대한 벤치마킹을 통해 100주년 기념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김 사무관은 “고난과 핍박으로 점철된 한센인들의 삶을 담기 위해 자료 수집부터 분류작업까지 세심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소록도가 국내 한센병의 역사를 보여 주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2016년 5월 개원 100주년을 맞은 소록도병원이 역사 편찬과 기념사업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현재 소록도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소록도갱생원 연보』 『국립소록도병원 운영규정』 등 한센인과 관련된 도서와 문서·도면·사진 등 1만여 점이 있다. 이 중 한센인들의 생활용품과 의료기기·사진 등 1315점은 1996년 문을 연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전시실 맞은편에는 병원 규율을 어긴 한센인들을 가뒀던 감금실(監禁室)과 남성 한센인들을 강제로 거세했던 단종대(斷種臺) 등이 있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소록도병원의 모태인 자혜의원과 한센인 죄수를 가뒀던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 등도 한센인의 아픔을 간직한 시설들이다. 소록도에는 자혜의원 등 지방·등록문화재로 지정된 12개 건물 등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유물·유적이 많다.

 소록도병원은 지난 1일 국가기록원과 ‘한센 100년 역사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 역사 정리작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기록물 보존 관리에 대해 국가기록원의 전문적인 지원을 받음으로써 체계적인 사료 정리 및 복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소록도는 1934년 일본 총독부가 자혜의원을 소록도갱생원으로 개편하면서 한센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됐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박해와 격리의 대상인 ‘죄인’이 된 것이다. 어린 사슴(小鹿)을 닮은 아름다운 섬이 ‘천형(天刑)의 땅’으로 불린 것도 이때부터다.

 섬 전체가 국립병원으로 지정된 소록도에서는 한센인 577명과 병원 직원 190명,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한센병이 사실상 소멸 단계로 접어들면서 한센인들의 평균 나이는 72세로 높아졌다.

 박형철(51) 소록도병원 원장은 “ 소록도병원은 국내 한센인의 1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며 “전문가 등과의 협의를 통해 치료기관만의 역할이 아닌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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