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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배우는 역시 '연기력' 이 기본

중앙일보

입력

임권택 감독이 거장(巨匠) 인 까닭은?

1990년대 이후 임감독의 영화들을 놓고 볼 때, 기자는 '배우기용술' 을 주목한다.

그는 대학로를 자주 찾는 드문 영화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임감독은 그곳 연극판에 '연기가 되는' 괜찮은 배우가 많다는 것을 진작 알았고, 실제로 이를 무대로 영화판의 통념을 뒤집는 파격적 캐스팅을 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에서 방은진을 발탁해 '태백산맥' 에 기용했다. 김갑수.정경순도 그런 경우. '서편제' 의 김명곤, '춘향뎐' 의 김성녀 등도 그렇다.

셈이 빠른 예술가라면 '상품성' 이 검증되지 않은 이런 배우를 쓰는 것은 모험이었던 시절이다. 그는 연극배우가 아니면, 차라리 신인을 선발해 썼다. '스타시스템' 을 체질적으로 거부했던 것이다.

임감독의 이런 기용술을 떠올리며, 기자는 최근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나비' 로 여우주연상에 해당하는 청룡표범상을 탄 연극배우 출신 김호정(32) 을 생각했다. 임감독이 연극판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했더라면, 이미 이 배우를 어느 작품의 주연급으로 기용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10년 전 연극 데뷔시절부터 알게 된 기자는 그녀가 참 '별종' 이라고 생각했다. 채시라 등과 함께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기인 그녀는, 일찍이 욕심을 내 방송국이나 영화판을 기웃거렸더라면 웬만큼 돈과 명성를 누렸음직한 재능을 갖췄다.

아무튼 김호정은 그런 욕심을 일단 접고 가난한 연극을 고집했다. 작품을 고르는 입맛이 까다롭기로 '악명' 이 높은데, 일단 냉철한 판단 끝의 결단은 호연(好演) 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세계적인 연출자 로버트 윌슨의 '바다의 여인' 에 출연해 연기의 절정을 보였다.

그를 지탱해준 힘, 그것은 '연기력' 이었다. 새파란 신인들에게 밀려 '퇴출' 당할 나이에 영화판에 진출한 그녀는 오히려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 결과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불량한' 배우가 되고 말았다.

김호정의 이번 케이스는, 연극.영화의 기본은 배우이며 그 배우의 기본은 연기력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지금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냐도 결국 그 '기본' 에 달렸다.

임감독은 진작 그 기본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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