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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스타열전 (67) - 브렛 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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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시즌을 앞두고 많은 이들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팀 전력에 회의를 가진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포스트시즌의 깜짝 돌풍에도 불구하고, 올시즌 팀을 떠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공수에서의 공백이 너무나 커보였기 때문.

그러나 지난해까지 시애틀에 A-ROD가 있었다면, 2001년의 시애틀에는 바로 175cm의 '작은 거인' 브렛 분이 버티고 있었다. 8월 18일(한국시간) 현재 타점 3위(105타점), 최다안타 2위(156개), 타율 4위(.327), 홈런 9위(27개)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의 활약은 올시즌 시애틀의 선두독주의 가장 큰 밑거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는 메이저리그의 쟁쟁한 강타자들을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의 4번타자로 기용되는 등 개인적으로도 그의 야구인생에서 최고의 해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실 브렛 분의 대변신은 시즌 전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해 샌디에고에서 활약한 그는 시즌 후반 오른쪽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중도에 시즌을 접어야만 했다. 다년계약을 노렸던 그였지만 샌디에고는 그에 대한 400만 달러의 옵션 대신 트레이드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친정팀 시애틀과 다시 1년 계약을 맺게 된 브렛 분은 스스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80kg가 채 안되는 체중으로는 빅리그에서 활약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무릎부상 치료를 병행하며 강도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하면서 약 7kg정도 근육을 불리는데 성공하였다.

시애틀의 스프링 캠프가 시작되고 브렛 분이 모습을 나타내자 팀 관계자 및 동료 선수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의 작고 호리하던 과거의 모습이 아닌 마치 뽀빠이와 같은 근육질의 모습으로 완전히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몸에 힘이 붙으면서 그의 타구 비거리 역시 비례하여 늘어갔다.

불어난 것은 근육만이 아니었다. 타구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자 점차 지난 몇 년간의 평범한 활약으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브렛 분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은 그가 올시즌 무슨 일을 낼 것이라는 예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즌에 접어들어서 그런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브렛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있어서 언제나 분신처럼 따라다는 사실이 있다. 바로 그의 동생인 애런 분(현, 신시내티 레즈) 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대에 걸쳐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

그의 할아버지인 레이 분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소속으로 2차례 올스타에 뽑히는가 하면 1955년에는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또한 아버지 밥 분은 총 7차례나 포수 부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에는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으로 이끌었던 주역이기도 했다. 당시 11살이었던 브렛은 우승 다음날 벌어진 퍼레이드에서 그의 아버지와 같이 퍼레이드 차량에 탑승하며 우승의 기쁨을 미리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런 야구집안에서 태어난 브렛 분 역시 야구에 타고난 소질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어린시절 브렛은 현재의 포지션인 내야수로 그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였다. 여러가지 그가 가진 조건이 내야수에 가장 적합하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그의 아버지 밥이 아들에게 포수를 절대로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명포수였던 밥 분에게도 포수라는 포지션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포지션임에는 분명한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엘 두라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팀동료 필 네빈과 함께 주목을 받았던 브렛은 1987년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28라운드에 지명을 받게 되나 그것을 거부하고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시절 그는 약간은 건방지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선수였다.

그가 얼마나 자신감에 충만한 선수였는지 보여주는 일례가 있다. 그가 대학 2학년 때 가을에 벌어진 경기였다. 팀의 3번타자로 출전한 브렛은 경기 후반 노아웃 주자 2,3루의 좋은 찬스를 맞이 하게 되었다. 상대팀 투수는 걸러도 좋다는 생각으로 외곽으로 공을 던졌고, 코치는 당연히 브렛에게 웨이팅 사인을 냈다.

그런데 브렛은 사인을 받자 갑자기 타석에서 벗어나 코치에게 공을 치겠다는 몸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에 사정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결과는 주자 일소 삼루타.

후에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 밥은 브렛에게 코치의 결정이 옳았고, 그것을 따랐어야 했다고 충고했다. 그러자 브렛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버지는 그 공을 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버지라면 주자를 진루시키려 했겠지만, 나는 공을 날려보내야만 했어요."

1989년에 미국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브렛은 1990년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에 시애틀에 의해 지명되면서 그의 프로선수로서의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약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한 브렛은 드디어 1992년 8월 19일 볼티모어 전에 2루수로 선발출장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3대 메이저리거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데뷔 첫해 브렛은 불과 76경기에 출전하여 홈런을 무려 12개나 날려보내면서 일약 차세대 스타의 자리를 예약해 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 다음해 시즌이 마치고 투수 에릭 핸슨과 함께 투수 바비 아얄라, 포수 댄 윌슨과 트레이드 되면서 신시내티의 붉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만 했다.

신시내티로의 이적 첫해 브렛은 타율 .320에 홈런 12개를 몰아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시대를 맞이 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타율은 점점 추락하기 시작했다. (95년 .267, 96년 .233, 97년 .223) 무엇보다 체격에 비해 지나치게 큰 스윙은 그의 삼진수를 가파르게 증가시키는 주범이었다.

그러나 추락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7년에 그는 29연타석 무안타기록을 세우는 등 타격에서는 최악의 해였지만 수비에서는 말 그대로 역사에 남는 대활약을 펼친다. 그 해에 브렛은 불과 2개의 실책만을 범하며 무려 .997라는 경이적인 수비율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2루수 최고 수비율 기록을 깨뜨리게 된다.

97년이 수비수로서 대활약을 한 해였다면 98년은 브렛이 타격에서 다시 몸을 추스리고 부활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98시즌을 앞두고 오픈 스탠스로 타격자세를 교정한 브렛은 그 해 생애 처음으로 20홈런 이상(24개)을 기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시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한편 골드 글러브 2루수 부문의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활에도 불구하고 신예 포키 리즈의 등장은 신시내티에서의 브렛 분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해 9월 20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는 한경기에 홈런 세 개를 몰아치는 괴력을 선보이기도 한 브렛이었지만 투수 보강이 시급했던 신시내티는 결국 시즌이 끝나고 11월에 그를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시키게 된다.

애틀랜타에서의 선수생활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년 연속 20홈런 이상(20개)을 달성하는 등 그의 장타력은 여전했지만, 애틀랜타의 감독 바비 콕스는 브렛 분이 팀의 2번 타자로서 테이블세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2번타자라는 자리를 망각한 '모 아니면 도'식의 그의 스윙 은 112개라는 개인 시즌 최다 삼진 기록을 경신하게 만들었고, 바비 콕스 감독의 심기를 늘 불편하게 했다.

더욱이 프로 데뷔이래 7년 동안 인조 잔디의 홈구장(시애틀의 킹돔, 신시내티의 시너지 필드)에서만 활약을 했던 브렛에게 터너 필드의 천연 잔디에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 해 브렛이 범한 13개의 실책 역시 브렛 개인으로서는 한 시즌 최다 실책 기록이었다.

그 해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비록 팀은 뉴욕 양키스에게 4연패로 무릎을 꿇기는 했지만 13타수 7안타, 3타점을 기록한 브렛의 활약은 놀라운 것이었다. 특히 시리즈 3차전에서는 1953년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짐 길리엄이 기록한 이래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한경기에서 3개의 2루타를 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1차전에서 패한 바비 콕스 감독이 2차전에서 선발 2루수로 브렛 대신에 백업 내야수였던 키스 로카르트를 내보내자 시즌동안에 감독과의 불편했던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시즌이 모두 끝나자 브렛은 트레이드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그 해 12월 그는 모두 6명이 얽힌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샌디에고로 다시 이적하게 된다.

2000시즌에 고교동창 필 네빈을 다시 만나게 된 브렛이었지만, 시즌 후반기에 찾아온 오른쪽 무릎의 부상은 그를 다시 트레이드의 도마위에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2001년 브렛은 샌디에고로 하여금 올 시즌 자신과의 옵션 계약을 포기한 것을 대단히 후회하도록 만들고 있다.

올시즌 브렛 분은 팀 동료 이치로와 함께 강력한 MVP후보중에 한명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가장 걱정되었던 무릎부상의 후유증은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지난 2년간 보였던 불안한 수비도 올시즌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특히 브렛 분으로서는 올시즌 생애 처음으로 개인타이틀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상황이다. 시즌 내내 한때 타점 부문에서 선두에 나서기도 했던 브렛 분은 후안 곤잘레스, 짐 토미 등과 함께 치열한 타점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다 안타 부문도 이치로의 벽이 너무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2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반지. 그는 언제나 아버지 밥 분이 이뤄냈던 80년 필라델피아의 우승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때의 감격을 이제 시애틀에서 아들 브렛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32살의 나이에 새롭게 태어난 브렛 분. 켄 그리피 주니어나 배리 본즈와 같이 선대의 후광에서 벗어나, 최고의 기량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작은 거인' 브렛 분이 펼쳐나갈 앞으로의 메이저리그 역사를 지켜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브렛 로버트 분 (Bret Robert Boone)

- 1969년 4월 6일 생
- 175cm, 86kg
- 우투우타
- 연봉 : 325만 달러(2001시즌)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1992~1993), 신시내티 레즈(1994~199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99), 샌디에고 파드레스(2000), 시애틀 매리너스(2001 현재)
- 통산성적 (8월18일 현재) : 1192경기, 타율 .263, 152홈런, 641타점, 591득점, 1152안타, 335볼넷, 50도루

-주요경력
1992년 8월 19일 메이저리그 데뷔
메이저리그 2루수 부문 최고 수비율 기록 : .997 (1997)
내셔널리그 골드 글러브 2루수 부문 수상(1998)
올스타 2회 선정( 199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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