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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신문지에 그윽한 문자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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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스크랩전에 전시되는 중앙일보 96년 1월 23일자 기사.

누렇게 변한 신문지는 고스란히 역사다. 문인들의 숱한 일화와, 지금은 타계했거나 혹은 문단의 원로가 된 어르신의 신인 때 모습도 누렇게 탈색한 신문지엔 그대로 다 있다.

그래서 4월 9일부터 5월 31일까지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에서 열리는 '문학기사 스크랩전'은 관심이 간다.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 신문의 문학기사 200여 점을 비롯해, 고 김춘수 시인의 여러 유품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강범우.김남조.박완서.박범신씨 등 문인 20여 명이 수십년간 간직한 자료를 공개했다.

전시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소설가 김동인과 염상섭이 주고받았던 이른바 '발가락 논쟁'관련 기사다. 사단은 김동인의 1932년 소설'발가락이 닮았다'에서 비롯했다. 소설은, 방탕한 생활 끝에 불임이 된 사내가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아기를 낳았고 사내는 아기와 닮은 곳을 찾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사실을 찾아내 자랑한다는 줄거리. 이 소설에 염상섭이 발끈했다. 자신을 염두에 둔 이야기라고 여긴 염상섭은 '소위 모델 문제'란 이름의 반박글을 신문에 내기에 이르고, 김동인은 곧바로 '나의 변명'이란 재반박글을 싣는다. 논쟁은 급기야 10회나 이어졌다.

이밖에 26년 양주동씨가 이광수씨의 '중용과 철저'를 비판한 글, 70년'김지하의 오적 사건' 담당 재판부에 박두진 시인이 보낸 작품 감정서 요지 등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문학기사가 전시된다. 02-379-3182.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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