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세상탐사] ‘애니팡 대박’ 의 불편한 진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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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31면

지난달 12일 프랑스 프로게임 대회인 ‘아이언 스쿼드’ 예선전. 한국의 15살 먹은 프로게이머 이승현 선수가 온라인 경기에 참가했다가 밤 12시가 넘어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자 ‘게임 규제 논란’이 일었다. 한국엔 16세 미만이면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없는 ‘신데렐라법(셧다운제)’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편법으로 어머니 아이디로 재접속해 게임을 게속했지만 결국 졌다. 게임업체들은 “과도한 규제가 황금알을 낳는 게임산업에 족쇄를 채운 꼴”이라고 입을 모았다. 10일까지 나흘간 부산에서 열려 30여만 명이 운집한 게임쇼 ‘지스타 2012’에서도 이 논란은 증폭됐다.
게임업계의 이런 목소리는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1. 하트에 숨겨진 중독성
최근 대박이라고 박수를 받고 있는 애니팡의 돈 버는 법을 들여다보면 씁쓸하다. 애니팡은 남녀노소가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카카오톡에 무료로 게임을 퍼뜨린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이 게임을 하자는 초대 문자메시지가 수시로 날아온다. 다른 사람에게 초대 문자를 보내야 게임용 ‘♥(하트)’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새벽에는 필자 휴대전화에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조○환님이 19443점을 기록해 당신을 이겼습니다’라는 문자까지 와 짜증만 잔뜩 났다. 하트를 다 쓴 뒤 8분을 기다리면 새롭게 하나를 더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주부·회사원들은 그 시간조차 참지 못하고 ‘미친×’ 소리까지 들어가며 하트를 산다. 현금 결제로 10개 1100원, 55개 5500원, 120개 1만1000원이다. 이런 식으로 애니팡은 하루 4억원씩 벌고 드래곤플라이트는 20억원씩 번다는 게 요즘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박 신화’ 스토리다. 2000만 명이 즐긴다는 국민게임 애니팡은 중독성을 퍼뜨려 폐인이 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턴다는 시쳇말을 들어도 할말이 없게 됐다.

#2. 게임산업과 아편장사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여교사인 강모씨. 그의 아들은 디아블로 게임에 빠져 가정불화까지 생겼다. 아들은 거짓말까지 하며 PC방에 가기 일쑤다. 가족회의 끝에 토요일에는 밤새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대신 평일에는 공부만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학교 앞 가게의 ‘100원짜리 뽑기’에 빠졌을 때 써먹었던 작전(?)이다. 매일 뽑기에 안달하던 아들에게 토요일만큼은 1만원을 집어주고 하루 종일 질리도록 하게 했다. 당시 아들은 한 달 만에 “이젠 재미 없다”며 외면했다. 강씨는 그런 희망으로 토요일 밤을 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6시가 돼 “밤새 했으니 이제 그만해야지”라고 하자 아들은 핏발 선 눈을 부라리며 대들었다. 아편과 같은 중독성으로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만든 게임’ 때문이다. 강씨는 이런 게임 구조를 몰라 아들을 패륜아로 만들었다고 후회했다. 이런 부작용에 신데렐라법이 정당성을 얻어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이젠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으로까지 이 법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의사·회사원·주부·대학생도 엔씨소프트·NHN이 만든 게임에 빠져 엄청난 사회 문제가 된 사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3. 굴뚝기업 족쇄와 대조
게임업체보다 더 많은, 더 심한 규제를 받고 있는 굴뚝기업 중에는 ‘자기 발목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제 돈으로 족쇄를 사야 하는 기막힌 일’까지 있다. 1억3000만원이나 하는 TMS도 그중 하나다. 오염자동측정기인 TMS는 ‘대기환경보존법 시행규칙’에 따라 굴뚝이 있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서울 시내에서도 호텔·병원 등 17곳(전국 1446개)에 이 기기가 달려 있다. 굴뚝 오염을 1시간마다 측정한 뒤 관제센터로 보내 기준치가 넘으면 처벌을 받는다. 기업이 돈을 벌 때 환경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경제활동 중 사회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손실을 끼치면서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외부효과’가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땐 정부도 TMS 설치 같은 규제를 할 수 있는 정당성이 생긴다. 하지만 올해 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선 게임업계가 엄청난 돈을 벌면서 내뿜는 사회적 오염을 정부는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폭력성·음란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먹을거리’라는 게임산업 육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비싼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키는 중독성 게임을 내놓고 국가적인 대박산업이라고 우긴다면 아편이나 카지노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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