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남에겐 강요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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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인 이수진씨는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엉뚱한 면이 있다고 했다. 캣츠아이를 연상케 하는 눈 화장을 한 그는 “섹시하게 찍어달라”고 할 만큼 자신감 넘쳤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장편문학상이 4회째를 맞았다. 올해에도 독특한 매력을 갖춘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이수진(25)씨의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이다.

 고양이. 요즘 반려동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수상작은 그런 고양이를 매개로 기호와 취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배타성과 폭력성을 다룬다.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모임의 얘기다. 이씨는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초적 취미’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은 고양이 애호가인 여자친구에게 차인 주인공인 나(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애묘인(愛猫人) 커뮤니티에 접속한 나는 여자친구가 오드아이(odd-eye, 두 눈의 눈동자 색깔이 다름)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 앞을 어슬렁대는 고양이가 여자친구의 것이라 확신한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애묘인 정기모임에 참석한다.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회원들의 냉대와 질시를 견디지 못한 채 뛰쳐나오고 만다. 그러다 애묘인 모임을 염탐하려고 와있던 ‘고양이인간안티클럽’ 회원을 만나 그들 모임에 들어간다. 이후 고양이와 관련된 회원들의 이야기가 날줄과 씨줄처럼 촘촘히 얽힌다. 이씨를 2일 만났다.

 - 내가 좋아하는 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흥미롭다.

 “취향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데,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을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원두를 어떻게 로스팅하고 품종이 뭔지 모를 수 있지 않나.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면 되지 계보를 따지면서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건 싫다.”

 - 고양이를 소재로 택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나.

 “예상 질문이었다. (웃음) 동물로서 고양이는 좋아한다. 하지만 고양이의 노예를 자처하거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소외시키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꺼려진다.”

 이씨는 “애묘인들이 자신을 미워할까 걱정된다”며 다음 이야기를 꼭 써달라고 했다.

 “고3 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며 서울 홍익대 앞에서 살았어요. 고시원에 있었는데 추운 겨울날 누가 고양이 다섯 마리를 버렸더라고요. 친구 둘이 한 마리씩 데리고 가고 저는 세 마리를 키웠는데 감당이 안돼 결국 분양했어요. 저, 고양이 좋아해요.”

 소설은 구분짓기와 무리짓기, 그에 따른 배제와 소외문제에 집중한다. 예컨대 장애인에 대한 오래된 편견, 난해한 소설을 쓰는 작가의 비애,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 등이다.

 -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고소장으로도 읽힌다.

 “정신적 소외자를 대변하는 거다. 소외의 종류를 생각하다 보니 평범한 사람이 소외되더라. 특별한 사람끼리 뭉쳐서 타인을 분리시키고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오히려 배제되고 만다.”

 스스로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이씨는 20대 초반에 소설가가 된, 평범치 않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작가라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소설가가 된 걸 보면 운명이 있긴 한 모양이다.

 - 원래 미대를 희망했었다.

 “대학에 떨어진 뒤 재수할 자신이 없어 조선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문예창작과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글 쓰는 건 타고나야 한다고 여겼고, 배워서 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1학년 때는 결석을 밥 먹듯이 해 학사경고도 받았다.”

 그런데,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 전환점에 소설가 이승우(53·조선대 교수)가 있다. 2010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이승우는 현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2학년 때 이승우 교수의 소설창작수업을 들었어요. A4 4장짜리 소설을 냈는데 ‘너 잘 쓴다. 소설 써봐라’ 하시더라고요. 그게 첫 소설이었어요. 5형제 중 셋째인데 의사에다 서울대에 다니는 형제들에 비해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열등감이 컸는데 인정받았다는 게 좋아서 소설도 열심히 쓰고 학교도 열심히 다녔죠.”

 - 20대 초반에 작가가 됐다.

 “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 듯한 느낌이랄까. 단편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가 2010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실리며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좋은 걸 써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괜찮아졌다.”

 그는 “늘 기로에 섰을 때 좋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 등단했고, 장편소설 하나 쓴 뒤 취직을 해야 할지 전업작가의 길을 가야 할지 마음을 잡지 못할 때 이번 당선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이다. 작가로서 이름을 단 첫 책이 나온다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이승우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너는 구성 능력이 뛰어나거나 문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입심이 세다고. 그래서 재미있는 거라고. 제 문장이 좀 길고 변사처럼 말하는 데 그런 걸 잘 살려서 열심히 써야죠.”

◆이수진=1987년 전남 광주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과와 동 대학원 졸업.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원초적 취미’ 당선되며 등단.

◆중앙장편문학상=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2009년 제정됐다. 중앙일보와 웅진싱크빅이 주최한다. 상금은 1억원이다. 올 수상작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은 내년 초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6시 서울 서소문 오펠리스 라비제홀에서 열린다.

[심사평]
설정 참신, 설득력은 부족
가능성에 손 들어줬다

중앙장편문학상 본심 심사장면. 왼쪽부터 문학평론가 김동식·조연정, 소설가 정이현·김별아·은희경·방현석·이순원씨. [박종근 기자]

2012 중앙장편문학상에는 300편 넘는 응모작이 몰렸다. 문자 매체가 독자를 잃어가는 사정 속에서도 장편문학상 응모편수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오랜 욕망을 확인시켜줌은 분명하다.

 올해의 응모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현상은 영상 매체의 문학화다. 흥미로운 이야기의 빠른 전개에 집중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러한 작품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아마도 문학적 문장일 것이다. 빠른 장면 전환이나 일상적 대사 전달에 소비되는 문장이 여러 작품에서 안타깝게 눈에 띄었다.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모두 일곱 편이다. 『심문』 『베이징 특파원』 『청와대를 잊어줘』 『상가수첩 로드무비』는 완성도는 높은 편이지만 주제 ·미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판단하기는 힘들다.

 반면 『통조림』 『알 품는 고양이와 라만차의 기사들』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은 미숙한 부분들이 눈에 띄지만 새로운 설정과 구성, 그리고 젊은 패기가 흥미를 끈다. 이중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상가수첩 로드무비』와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이다.

 『상가수첩 로드무비』는 매끄럽게 완성된 소설이다. 채무 변제를 위해 여러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서술하는 이 소설은 화자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건강한 태도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서울의 실제 지명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해당 지역이 환기하는 특수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짚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은 서로 다른 취향이 야기하는 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설이다. 참신한 설정과 진지한 주제가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파편적 구성과 급작스러운 결말은 이 작품의 결정적 한계다.

 심사위원들이 일찌감치 손을 들어준 쪽은 『고양이인간안티클럽』이지만 오랜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응원하기로 했다. 앞으로 당선자가 작가로서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스스로의 몫이겠지만 불안하고 두려운 그 길에 이번 당선이 든든한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이순원·은희경·방현석·김동식·김별아·정이현·조연정 대표집필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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