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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의 모순…교실 문짝 떨어져 '흉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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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교 식당이 없는 서울 양천구 A 중학교는 전교생 2000명이 교실에서 밥을 먹는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급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는 복도는 아수라장이 된다. 조리실도 학교 외진 곳에 있어 급식을 나르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서울 은평구 B중·고교의 알루미늄 창틀은 설치된 지 40년이 넘었다. 창틀 여기저기가 휘어져 문을 여닫기가 힘들다. 이 학교 학생은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창틀로 찬바람이 들어와 춥지만 어쩔 수 없다”며 “창문을 억지로 닫으려다 문짝이 떨어져 친구가 다칠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초·중·고교생들이 화장실·급식시설·탈의실 등이 열악해 큰 불편을 겪고 있지만(본지 6월 20일자 1, 4, 5면 등 ‘학교 업그레이드’ 시리즈) 현장에서는 이상한 행정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내건 무상교육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에 서울 초·중·고 1800여 곳 학생들의 불편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노후 화장실 등 환경개선 예산을 올해보다 42.7%(2319억원) 감축한 3108억원으로 짠 것이다. 반면 무상급식과 누리과정(3~5세 아동 교육) 지원비를 포함한 무상교육 예산은 올해보다 82.2%(3621억원) 늘린 8026억원으로 편성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일 “복지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어 학교환경개선 사업비를 줄이게 됐다”며 “9일 내년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학교 신설·급식환경개선·교육환경개선 등에 쓰이는 시설예산(본 예산 기준)이 올해 5427억원에서 내년엔 3108억원으로 줄어든다. 급식환경개선비가 571억원에서 123억원으로 78.5%, 화장실 개선과 냉난방 설비 교체 등에 쓰는 교육환경개선사업비는 1810억원에서 576억원으로 68.2%가 감축된다. 특히 화장실·냉난방·창문 교체·탈의실·바닥 보수 예산 등 8개 항목에 679억원을 배정했던 교육청은 내년에는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화장실 수리비 115억원, 책걸상 교체비 42억원 등을 지원키로 한 게 전부다.

 반면 무상급식 예산은 올해 1383억원에서 내년에 2283억원으로 65% 늘어난다. 무상급식 대상이 올해 중 1에서 중 2로 확대되고 누리과정 지원비가 배로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교육청은 설명한다.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은 “학교시설 개선이 시급하지만 무상 보육·급식은 중앙정부 정책이어서 다른 부문 예산을 갖다 복지부문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9일 시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시의회는 17~27일 상임위, 12월 3~10일 예산결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예산안을 확정하게 된다. 12월 19일 선출되는 새 교육감도 예산안을 손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이규성 예산정보담당관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시·도 의회가 교육청 예산을 통상적으로 12월 15일까지 확정해야 한다”며 “새 교육감은 추경 예산을 통해서만 필요한 부분을 반영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 심정아(39·서울 사당동)씨는 “학교시설은 아이들 안전은 물론 정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개선 노력을 소홀히 하는 교육당국이 무책임한 것 같다”며 “학교 화장실 가기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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