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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소통령, 구재상의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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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이정재
경제부장

그는 2인자로 불린다. 그의 이름 앞엔 박현주(미래에셋 회장)라는 세 글자가 늘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박현주의 남자, 박현주의 창업공신. 미래에셋그룹 구재상 전(前) 부회장 얘기다. 지난 주말 그가 회사를 그만뒀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증권가가 떠들썩했다. 박현주와의 불화설이 먼저 퍼졌다. 다음은 ‘건강·휴식설’이 뒤따랐다. 수순대로다. 잠시 화제가 됐지만 곧 잊혀질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들고 나는 증권가가 아니던가. 게다가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증권사 임원 한 사람의 퇴진은 어찌 보면 아주 작은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내겐 아니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했다. 그냥 이대로 그를 보내선 안 될 것 같았다. 송사(送辭)가 필요했다. 그는 증권가 세 가지 신화의 주역이다. 그의 퇴진은 그 세 신화의 동반퇴진을 의미한다. 물론 이미 이심전심, 증권가 누구나 알고 느끼던 바다. 어쩌면 그의 퇴진은 이를 ‘확인사살’한 것일 수 있다.

 첫째는 펀드 신화다. 나는 구재상을 ‘펀드 소통령’이라고 부르곤 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강한 턱선, 오척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강단으로 그는 수십조원의 돈을 굴렸다. 4년 전 많을 때는 35조원, 국내 주식형 펀드의 절반을 주물렀다. 그는 미래에셋이 주도한 ‘펀드 신화’의 야전사령관이었다. 미래에셋은 압도적인 힘으로 시장을 끌어갔다. ‘적금 대신 적립식 펀드’ ‘1인 1 펀드 시대’를 열었다. 여기엔 수익률 두 자릿수를 만들어낸 구재상의 힘이 있었다. 펀드 시장은 10년도 안 돼 10배 가까이 커졌다. 2009년엔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약 130조원에 달했다. 1990년대 말 10조원 안팎에 비하면 괄목상대다.

 펀드 신화는 한국 자본시장을 송두리째 바꿨다. 증시는 ‘개미’의 무덤에서 기관투자가의 비무대(比武臺)로 바뀌었다. 외국인투자자와 경쟁할 힘도 길러졌다. 펀드에 투자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까지 생겼다. 노후 대비 자금도 대규모로 몰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후 그 환상은 깨져갔다. 올 들어 펀드 설정액은 9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마땅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뭉칫돈은 채권과 적금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재상 퇴진이 펀드 신화 쇠진과 궤를 같이한다는 얘기다. 공교로운 일이다.

  둘째는 성장 신화다. 정확하게는 성장주(株) 신화다. 구재상은 성장주를 찾는 데 남달랐다. 어떤 회사, 어떤 주식이 크게 뻗어나갈지 뀄다. 주가가 계속 오르는 상승장에선 더 위력적이었다. 그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한 펀드매니저는 “오죽하면 밤새 종목 연구·분석하기보다 구재상 무조건 따라 하기가 낫다는 얘기가 나왔겠느냐”고 돌아봤다.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다. 성장주 신화의 반대쪽엔 거센 비판도 있다. ‘쏠림’을 만들어냈다는 게 대표적이다. 특정 주식을 사고, 소문 내고, 또 사면? 그 주식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는 쪽이 시장을 장악한 미래에셋이라면, 결과는 불문가지. A자산운용 C사장은 “쏠림을 만들어내는 ‘미래 스타일’은 상승장에서만 통한다”며 “저성장 시장에서 ‘미래 스타일’은 작동 불가능한 과거 스타일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마침 경제는 국내외 불문, 본격 저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셋째는 평생직원 신화다. 구재상은 창업공신이다. 2005년 3월엔 ‘평생직원’이 됐다. 만 60세까지 고용 보장, 본인·자녀의 해외유학비 지원이 골자다. 당시 증권가는 환호했다. “샐러리맨도 오너급 직원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제도가 다른 회사에도 퍼지길 고대했다. 그때도 의구심은 있었다. “미래에셋그룹이 계속 초고속 성장하면 모를까, 일반 직원에게까지 혜택이 주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의구심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래에셋의 성장이 뒷걸음치면서 평생직원의 신화도 부서졌다.

 구재상과 함께 퇴진하는 세 가지 신화, 그것이 그를 위한 송사라면 끝은 어때야 할까. 미래에셋의 쏠림을 경계한 C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굳이 따지자면 과(過)보다 공(功)이 많다. 과는 버리되 공은 꼭 다시 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