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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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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27면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논어 술이(述而)편 속 공자님 말씀이다. 그 뒤에는 ‘그중 스승으로 삼을 만한 사람은 기꺼이 따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학습을 통해 바꿔라(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는 말이 이어진다. 공자는 이렇듯 현자를 찾아 배우고, 또 부족한 사람은 교육으로 계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왜 꼭 ‘삼(三)’일까? 중국인에게 숫자 ‘三’은 철학적 의미가 깊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고 했다. 완성의 시작이 바로 숫자 ‘三’인 것이다. 고대 자전인 설문(說文)은 ‘숫자 삼은 하늘·땅·사람의 도를 뜻한다(三, 天地人之道也)’고 했다. ‘三’은 막연히 ‘많다’라는 뜻을 갖기도 한다. 여러 번 생각한 뒤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의 ‘삼사이행(三思而行)’에서 알 수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성어도 있다.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남이 이를 믿게 된다는 뜻이다.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면 믿게 된다는 의미로 한비자 내저설(內儲說)편이 출처다.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 때 일이다. 위나라는 조(趙)나라에 태자를 인질로 보내며 수행원으로 충신 방총(龐<8471>)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 방총은 조정을 비운 뒤 분명 누군가 자신을 음해할 것으로 예상했다. 떠나기 직전에 왕을 만나 “한 명이 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해도, 두 명이 외쳐도, 세 명이 말해도 믿지 말라”고 했다. ‘무릇 시장에는 호랑이가 있을 리 없으니, 여러 사람이 호랑이가 있다(三人言而成虎)고 말해도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당부였다. 왕은 “그럴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답했다. 그러나 간신들의 거듭된 음해 공작에 넘어간 왕은 조나라에서 돌아온 방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12월 대선 가도에 세 후보가 뛰고 있다. 공자님 말씀대로 그들 중 과연 우리의 스승은 있는 것인가? 그들은 혹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며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점점 헷갈리는 양상으로 대선이 치닫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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