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개편 아닌 '기능' 개편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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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49회에 걸쳐 정부 조직 개편이 있었다는 통계가 있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선 한번도 조직개편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 조직의 원리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작에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정부 조직의 원리도 달라져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시장경제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부가 되레 시장기능을 저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의 기능은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지, 특정산업을 육성 또는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정부 조직은 '산업.품목 중심'이 아닌 '기능 중심'이 돼야 한다. 예컨대 산업자원부의 대부분의 국.과들은 지금도 산업별.품목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벤처 산업의 경험에서 보듯 특정산업에 대한 지원은 곧바로 규제를 낳는다. 이제 정부가 무슨 무슨 산업을 책임지고 키운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둘째, 정부의 기능은 '공급.생산자 관리'가 아닌 '수요.소비자 관리'여야 한다. 공급자가 살아남거나 도태되도록 하는 것은 시장의 역할에 맡기고, 정부는 수요자가 공급자와 대등하게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데 힘을 쏟으라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에서 이뤄지는 조직개편만이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고 조직을 그저 통폐합하는 식의 개편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조직 개편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했지만, 결과도 평가도 다 좋지 않았던 것은 위와 같은 원칙이 없이 손을 댔기 때문이다. 결국 새 정부 출범 후 1년여 동안 행정부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조직은 혼란에 빠지면서 조직개편의 성과는 얻지 못했다.

새 정부에서도 서둘러 1년 이내에 결과를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직 개편의 원칙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에 해야 한다. 특히 정부 조직 개편의 목적이 조직.공무원 숫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조직 개편은 곧 숫자 줄이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무원 숫자는 많은 편이 아니다. 정부 기능을 정책과 서비스라고 할 때 정책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비중이 클 뿐이다. 더욱이 정책이 규제로 나타나는 게 많다 보니 더욱 공무원 숫자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조직 개편에서 필연적으로 표출될 공무원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숫자 줄이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는 조직 개편과 별개로 정리해야 한다.

유명무실하거나 당초 설립 취지와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위원회가 적지 않다. 한번 만들어진 조직을 없애기 힘든 탓이다. 각종 위원회의 기능과 필요성을 영점(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규제개혁도 마찬가지 방식에서 접근해야 한다. 규제 건수를 줄이는 식의 개혁은 무의미하다. 꼭 필요한 규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규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와 관련, 감사원 운용방식을 재검토하기를 제안한다.

감사원이 직무감사를 하기 때문에 각 부처가 면피용으로 규제를 남발하고,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감사원이 규제의 원천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감사원이 회계감사만 하고, 직무감사에선 손을 떼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직무감사는 외부의 전문기관을 통해 성과를 체크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게 낫다.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해 청와대의 업무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각 부처 행정업무는 총리가 책임지고 총괄토록 하고, 청와대는 대통령 프로젝트 또는 국가 프로젝트에 치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청와대 비서실이 분야별 담당 수석과 부처별 비서관 체제로 운용되는 것부터 바꿔야만 한다.

사회=강경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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