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부부 백년해로만 기원했지 101년째에 닥쳐올 상황은 애써 외면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람 이름을 종종 잊어버리는 주제에 40년 전 일은 생생하게 기억나니 혹시 나도 치매 근처를 기웃거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즈음,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벌이던 내기 장난이 있었다. 길에서 마주친 낯 모르는 어른에게 “아저씨(또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깍듯이 인사하는 것이었다. “어, 그래 그래. 아버지는 잘 계시고?”라고 웃으며 응대해주면 내가 이기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친구가 이기는 내기였다. 내기의 개발자이기도 했던 나는 단 한 차례도 진 적이 없었다. 백이면 백 “아버님은 잘 계시고?”였다.

 좀 더 커서 생각해보니 이길 수밖에 없는 내기였다. 낯 모르는 꼬맹이라도 인사를 하면 반가이 받아주는 게 한국 사람의 심성이다. 게다가 내가 자란 곳은 당시(1970년대 초) 인구가 12만 명을 조금 웃도는 지방 소도시였다. 한두 다리만 건너도 어느 동네 누구인지 다 아는 처지였다. 일단 살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게 “너 누구냐?”고 퉁명스레 대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터였다.

 요즘 와서 새삼 깨달은 것은, 어르신들이 알은체를 해준 데는 다정한 심성과 소도시의 공동체적 분위기 외에 한 가지 요인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기억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뉘 집 자식인지 모르지만 저렇게 넙죽 인사하는 것을 보면 내 친구나 형·동생뻘의 아들놈인 게 틀림없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요즘 내가 사람 얼굴·이름 잊어버리는 게 한두 번이던가, 어서 인사를 받아주자…. 아마 어르신들은 재빨리 이런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미 많은 분이 세상을 뜨셨을 그때의 어른들. 두 달 전 치매 증세의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소시켜 드리면서 밀려든 온갖 상념의 뒤끝에 옛날 일이 떠올랐다. 민망하고 죄송했다. 요양원에 면회를 가면 아버지는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이북에서 내려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는 얘기, 외딴 산골에 들어가 고구마밭 일구며 살고 싶었는데 너희 어머니가 반대해 못했다는 얘기….

 치매 증세의 아내를 보살피다 지쳐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던 서울 영등포구 이모(78) 노인의 비극이 남 같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70~80대 동년배 세대도 그렇지만, 자식뻘인 40~50대에게도 다른 사람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인정받았으면서도 요양원 입소 전까지 가정방문 서비스 일체를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부담은 대부분 쇠약한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부부란 과연 무엇인가. 상대에게 부담을 끼치는 적정선은 과연 어디인가. 불행히도 우리는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기원하기만 했지 101년째에 맞이할 두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왔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