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연속 성폭행 당한 10대女 "사귀는…" 충격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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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8월 18일 지적장애 3급인 A양(16)은 인터넷 채팅 중 김모(35·무직)씨를 만났다. “잠잘 곳을 마련해 주겠다”는 김씨의 친절한 말에 A양은 충남 서천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친절한 아저씨’ 김씨는 A양을 만나자 돌변했다. 18일부터 23일까지 A양을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 경찰은 김씨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26일 구속했다. A양은 바로 전날(8월 17일)에도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멀티방으로 데리고 간 박모(27·불구속)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상태였다. A양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졌다. A양은 경찰에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가출해 잠잘 곳이 필요했다. 아저씨의 강압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도가니’ 이후 장애 여성 대상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장애여성, 특히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성범죄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18개 장애인 성폭력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장애여성 중 72.8%가 지적장애여성이었다. 성폭력 상담을 받은 지적장애여성 수도 2007년 529명에서 지난해 987명으로 늘었다. 전체 피해 여성장애인 중 지적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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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이 통계에서 상담받은 지적장애인 수는 2009년 1506명을 기점으로 약간 감소하고는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원래 표본으로 잡은 18개 상담소의 상담 업무가 2009년 이후 생겨난 다른 민간 상담기구로 상당수 분산됐다”며 “공식집계에 누락된 피해 지적장애인 수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적장애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보면 일정한 패턴들이 발견된다. 상당수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랫동안 여러 번 피해를 보았다.

 2010년 10월부터 올 2월까지 지적장애여성 8명을 성폭행한 이모(42·무직)씨 사건을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피해 여성들 중 일부는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조사 과정에서 ‘사귀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지적장애여성의 경우 범죄자가 접근하기 쉽고 주변에 돌보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피해가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상당기간 지속된다”고 말했다.

 가해자도 무직·노인·일용직근로자 등 주로 피해자 주변의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이 많았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대개 용돈을 주는 등 환심을 사 접근한 뒤 범행을 했다. 지난 8월 경남에서 지적장애 여중생을 여섯 차례 성폭행해 구속된 김모(64·무직)씨는 피해자에게 범행 뒤 1만~2만원을 쥐여줬다.

 보건복지부는 발달장애인의 생활을 도와주는 성년 후견인 제도를 내년 7월 시행할 계획이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합친 개념이다. 후견인을 지정해 발달장애인의 법적 권리를 대신 행사해 주는 제도다. 이를 통해 성폭력 등 범죄로부터 지적장애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김진우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며칠에 한 번씩 와서 돌봐주는 이 제도로는 범죄 예방을 하는 데 큰 역할을 못할 것”이라며 “미국 모든 주에서 시행 중인 발달장애인 지원센터(P&A·권리옹호센터)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센터는 조사권을 부여받은 변호사·복지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합동으로 장애인이 처한 범죄문제 등 각종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곳이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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