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비즈 칼럼

설탕시장 개방하면 업계 망한다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설탕 관세율을 30%에서 5%로 인하하는 관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3개 대기업에 의해 굳어진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고 설탕 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국내 제당업계는 이 같은 정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50%, 유럽연합(EU) 84% 등 선진국도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관세율을 낮추면 국내 제당산업이 붕괴할 것이고 결국에는 설탕 가격도 폭등할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국내 제당 업계는 지난해 원당 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물가안정시책에 따라 설탕 가격을 올리지 못해 상당한 적자를 보았음을 주장하며 0% 할당관세 적용도 모자라 기본관세율을 인하하려는 정부 조치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기업 입장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EU 등이 설탕에 대해 높은 관세를 유지하는 것은 제당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원당을 생산하는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굳이 외국 사례를 참고하고자 한다면 이들 국가보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원당을 수입해서 설탕을 생산하는 캐나다나 말레이시아 사례를 살펴보는 게 더 적절하다. 캐나다는 4.5%, 말레이시아는 0%로, 설탕에 대해 낮은 관세율을 유지하면서 수입이 급증하는 경우나 다른 시장 상황에 따라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관세율을 낮출 경우 우리 제당산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됐다. 실제 지난해 설탕에 0%의 할당관세를 적용했지만 수입된 설탕은 2만t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의 2%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산업 기반의 잠식에 대한 제당업체의 우려는 자동차 산업의 사례를 상기해 본다면 기우(杞憂)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988년 수입 자동차 시장의 개방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붕괴시키리라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외국 자동차 업체와의 경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해외 판로를 넓혀 왔다. 시장 개방 25주년을 맞은 현재,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금액으로는 이미 10%를 넘었고, 판매대수로도 10%에 가까워지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 수입차 비중이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동안 국내 제당업계는 높은 관세의 보호막 아래에서 독과점 이익을 향유해 왔다. 제당업계의 매출이익률이 여타 제조업이나 일반 식료품업보다 훨씬 높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보호원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물가 수준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가 낮은 시장 개방 수준 때문이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덜 받는 이유가 중국 제품 등 가격이 낮은 제품을 수입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제당업계는 시장 개방에 반대하기보다는 그동안 향유해 온 독점이윤을 소비자와 나누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힘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