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공룡, 중국이 뜬다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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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고급두뇌와 인력, 그리고 고위층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은 국내의 첨단산업 열기 조성을 넘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선전시의 화웨이테크놀러지스의 조립라인들은 멀리서 보면 장난감, 크리스마스 장식, 의류 등 수출용 소비재를 대량생산하는 중국 남부의 수백개에 달하는 여타 공장들과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중국 노동자들은 긴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작업대에 길에 줄지어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화웨이의 직원들이 바비 인형의 입술에 색깔을 칠하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초고속 광섬유 통신망에 이용되는 첨단 광교환기의 핵심인 소형 크리스털 필터와 프리즘 등 정밀 부품을 제작하고 있다.

작년에 27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화웨이는 국제시장에서 아직 시스코 시스템스나 노텔 네트웍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격차는 급속히 좁혀지고 있다. 광교환기 제작에 사용되는 시험기 제조업체 에질렌트 테크놀러지스의 아시아태평양 기술담당 이사 이안 존스톤은 "지난 18개월간 화웨이의 학습곡선은 기하급수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화웨이의 소프트웨어와 연구개발 기술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화웨이는 다국적기업들의 제품을 모방하지도 않고 광학 부품들을 수입하지도 않는다. 이 기업은 부품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나는 서구 기업들에게 심사숙고하라고 말해 왔다. 화웨이는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고 곧 서구 기업들을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의 정보기술 현실은 땀을 흘리며 자전거 뒤에 PC를 싣고 가는 한 촌사람의 사진 한장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었다.

중국의 현재 모습은 인터넷으로 용(Dragon)을 한번 검색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중국은 다른 모든 국가들처럼 정보기술 분야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자국의 중요한 하부구조-통신체제, 소형칩,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가 미국산으로 표시되는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국의 지도자들이 지난 몇년간 IT 관련 산업을 급속히 육성해 왔다.

주판 발명 이후로 뛰어난 기술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이 국가는 최고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요람이 되길 원한다.

중국이 미국와 일본의 IT 세력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부패, 낡은 금융 시스템, 혁신 부족, 지적재산권 경시 풍조 등 여러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역동적인 기술 산업에 필수 요소로 인식되는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풍부하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있다.

  • 거대한 시장 : 수백만 중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급속히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현상은 서구에서 진행중인 IT 매출 침체의 방어 수단이 된다. 중국은 2004년까지 이동전화와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세계 최대의 시장이, PC 분야에서는 미국에 이어 2위 시장이 될 전망이다.

  • 최신 네트워크 : 많은 국가들이 전화사업 규제 완화를 주저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독점을 폐지하고 3년간 7개의 경쟁 기업을 허가했다. 중국정부는 또 이번 달 케이블 TV 기업들이 지역 전화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러한 경쟁으로 각도시들마다 최신 광대역 통신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금 중국 대륙은 광섬유 케이블이 바둑판처럼 깔리고 있다.

  • 생산 기반 : PC 부품 생산의 주요 기지 대만은 중국 투자에 열을 올리며 수십만명이 진출해 있다. 이는 중국이 세계 3위 IT 제품 생산 국가가 되는데 기여했다. 중국 무역부에 따르면 2000년 중국 첨단기술 수출은 50% 상승한 3백70억달러에 달했으며 올해도 세계적인 정보기술 매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약 40% 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이 부분에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인 세계 2위로 뛰어 오를 가능성이 크다.

  • 인력과 두뇌 : 싸고 풍부하고 의욕 넘치는 인력이 중국의 첨단기술 생산을 이끌어 왔다. 중국은 또 세계에 자국의 기술진과 연구 인력을 수출한다. 소프트웨어 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는 상하이(上海)에 대규모 고객지원시설을 설립했다. 이 시설의 기술담당 책임자 토드 메인은 이에 대해 "상하이에는 인재가 매우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IT 산업 붕괴에 애를 태우고 있지만 중국의 IT 성장세는 약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닷컴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내고 있다.

    상하이 푸둥(浦東)지구, 베이징(北京) 중관춘(中關村) 첨단기술 개발지구와 함께 정보화 산업의 온상인 남부 해안도시 선전. 이곳의 젊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첨단기술 사업가들은 미국 실리콘 밸리의 전성기 때와 같은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엔지니어에서 인터넷 사업가로 변신한 제이슨 정은 "중국의 미래는 첨단기술에 있고 우리가 이 미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사람이 한가지 목표를 지향한다. 정부, 시장, 소비자 모두 중국이 개발한 첨단기술 제품을 만들기를 바란다.

    선전의 첨단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5년 전의 미국처럼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JIM ERICKSON (Asia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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